요즘 들어 남편이 수상하다. 대중가요에서였나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20여년을 가까이 살 맞대고 살았는데 의심의 불씨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남편은 오로지 한 길밖에 모르고 살았다. 가정과 직장. 성실하나로 친정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뚝심 있게 밀어부처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의 남편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동창애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기 때문이다.
“얘, 남자는 다 똑같더라. 우리 남편은 아니겠지. 우리 애 아빠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딴 주머니 차고 다니는 게 남자라니까. 글쎄 세훈이 엄마 알지? 그 집도 이번에 이혼한다고 난리잖아.”
“어머, 왜?”
“왜긴, 여태 뭐 들었니? 딴 주머니 찼다니까. 글쎄 뭐라더라? 등산모임에서 둘이 눈이 맞았다나? 아무튼 뒤돌아서면 딴 생각하는 동물이 남자라는 동물이라더니. 세훈이 아빠 병수발 다 받아낸 게 세훈이 엄마인데 건강 생각한다면서 다닌 등산모임에서 바람이 날 줄 누가 알았겠니?”
“어머, 어머. 세훈이 엄마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위자료나 왕창 뜯어내고 갈라서는 거지. 간통죄로 안 처넣은 게 다행이라나 뭐라나.”
동창애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행이 점점 거침없었다. 동창애의 언행처럼 나의 의심도 거침이 없었다. 남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둥, 셔츠 옷깃을 살피는 등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던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모르는 번호들이 적혀있었고 퇴근하면 바로 퇴근하던 남편은 요즘 새벽에나 들어왔다. 어딜 다녀오는 것이냐고 해도 답이 없었고 술을 마신 것 같지 않은 것이 회식도 아닌듯했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슬쩍 거실에 나와 서 있는데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때다 싶어 문자를 열어보니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는 등의 문자가 와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음에 더 서글퍼졌다.
날이 밝았다.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니 두 눈이 퀭했다. 어쩐지 잠을 한 숨도 못잔 나보다 남편의 얼굴이 더 퀭해보였다. 속으로는 두 집 살림 하려니 힘들기도 하겠지라며 비꼬았으나 아직은 내색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렇다 할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갔을 때 어제 밤에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어떤 여편네가 받겠지라는 생각을 했건만 멀쩡한 남정네가 전화를 받았다.
“저, 혹시 김영훈씨 아세요?”
“네? 김영훈이요? 누구시죠? 전 그런사람 모르는데.”
“네? 어제 김영훈씨한테 수고 많았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문자 보내시지 않으셨어요?”
“아~ 대리기사요?”
전화를 받은 남자의 입에서는 대뜸 남편을 대리기사라고 불렀다.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는 남편이 왜 야간 대리운전을 뛰고 있는가. 왜 나에게는 일언반구 아무런 말도 없이 투잡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씻고 나온 남편이 채 옷을 다 꺼내 입기도 전에 따져물었다.
“당신 뭐야? 당신 밤에 대리기사 뛰어? 도대체 왜? 당신이 왜!”
“당신 내 휴대전화 뒤져봤어?”
“지금 그게 문제야? 왜 대리기사를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하고 있냐고 왜!”
나는 남편에게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 그간 남편을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이 왜 힘든 시간을 홀로 보내게 내버려두었나 하는 자책감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 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곧 그만 둘 거야.”
남편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고 자리를 회피했다. 하루종일 넋이 나가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는데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얘, 나다. 김서방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니. 내가 손 벌릴 곳이 없어서 너네한테까지 손을 다 벌리고. 김서방 덕분에 다행히 급한 불을 껐다고 전해줘. 너도 마음고생 많았지? 조만간 집으로 와. 맛있는 저녁 해 줄 테니까.”
“엄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 해봐.”
“어머, 너 몰랐니? 내가 얼마 전에 급한 목돈이 좀 필요해서 전화했는데 김서방이 받더라고, 그래서 너랑 잘 상의해서 돈 좀 구할 수 있겠냐고 했지. 그랬는데 넌 모르고 있었니?”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괜히 친정 부모님 걱정할까봐 내 통장 하나 건드리지 않고 혼자 그 목돈을 구하려 대리운전까지 했던 거다.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야 남편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남편을 꼭 안았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런 내게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이 정도도 못하면 어디 쓰겠냐고 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나는 남편과 다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오늘은 하늘이가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입니다. 달력에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도 그려놓았지요. 바로 하늘이의 외국 펜팔 친구 데이빗이 오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는 설레는 마음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친구가 도착하면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잠을 설친 것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난 하늘이는 분주하게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우리나라와 하늘이가 살고 있는 보성을 함께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하늘이는 좋은 방법이 생겼다며 싱글벙글 입니다. 드디어 만난 하늘이와 데이빗. 하늘이는 곧장 녹차 밭으로 데이빗을 데려갔습니다. 데이빗은 녹차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지요.
“데이빗! 녹차를 마셔본 적 있다고? 티백에 담겨져 있는 녹차를 말하는 거지? 오늘 우리가 마실 녹차는 좀 달라! 기대하라고~”
한껏 신이 난 하늘이는 데이빗을 데리고 녹차 밭을 구경한 뒤 조그마한 다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계셨고 사람들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늘이와 데이빗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지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녹차 밭에 오신 여러분과 차를 함께 나누어 마시게 되어 기쁘네요. 오늘은 다기를 이용하여 차를 우리는 법, 그리고 차를 마시는 예절 등 다례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하늘이가 외국인 친구 데이빗을 위해 준비한 것은 바로 다례체험이었습니다. 보성녹차의 진중하고 진한 맛을 좀 더 세심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다기의 이름과 함께 오늘 마실 차는 올해 수확한 햇차로 우전이라고 불리는 녹차를 이용하여 차를 마시는 예절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선 두 손으로 뜨거운 물을 사발에 붓고 다관 뚜껑을 열어 조금 식은 물을 다관에 따릅니다. 그리고 찻잔이 따뜻해 질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부어두고 차 우릴 물을 준비합니다. 한김 나간 따뜻한 물을 다관에 붓고 여린 녹차를 조금씩 덜어 넣습니다. 녹차가 우러나는 동안 찻잔을 데우던 물을 퇴수기에 따라버려주세요.”
다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정숙한 분위기로 차를 우리고 예를 지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늘이와 데이빗은 더욱 진지한 모습이었지요. 차를 우리는 방법은 계속 되었습니다.
“자! 앞에 손수건처럼 보이는 다건을 이용하여 다관을 받친 후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는 자신의 잔에 먼저 따라보고 색과 향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팽주는 각각의 잔에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세 번에 나누어 차를 따릅니다. 잔 받침이라 불리는 차탁에 잔을 올려 큰 손님부터 드린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세 번에 나누어 차를 입안에 굴리며 색과 향 그리고 맛을 차례로 음미합니다. 어때요? 어렵지 않죠?”
하늘이와 데이빗도 천천히 차를 음미해보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향과 맛을 느끼기 전에 꼴깍꼴깍 마셨던 것을 약간 후회하며 말이지요.
하늘이도 보성에 살면서 녹차를 수없이 마셔왔지만 녹차가 이렇게 진하고 무거운 맛을 내는지 몰랐습니다. 그동안에는 그저 텁텁하고 흔한 차라고만 여겼었지요. 무엇보다 외국에서 온 데이빗이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차를 우리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뿌듯하였습니다.
하늘이는 늘 즐겨 마시는 녹차이지만 늘 티백이나 가루로 물에 타 마시기만 하여 가볍게만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예를 갖추어 먹어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훨씬 고소하고 단 맛이 느껴지며 진한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맴돌았지요.
데이빗도 굉장히 즐겁고 색다른 추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여린 잎에서 이런 진한 향을 낼 수 있다면서 놀라워했지요.
오늘은 데이빗과 하늘이 둘에게 여린 잎이 남긴 진한 향은 더욱 진한 추억으로 한 잔의 녹차와 같은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높고 큰 백화점 사이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 유니폼을 챙겨 입고 나타난 것을 보니 오늘도 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형준의 모습이 보였다. 혜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형준과 혜연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학창시절 당시에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나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나면서 둘은 새삼 가까워졌다. 30대를 넘긴 나이라 그런지 거리감이 없었고 이야기도 훨씬 잘 통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니 직장은 어떠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시간을 추억하다 자연스레 서로의 취미에 대해 물었다.
“나 쭉 야구부였던 거 알지? 물론 지금은 선수로 생활은 못하지만 주말이면 거의 프로야구 보러 잠실에 가.”
“아 맞다! 너 야구부였지? 유니폼 참 멋있었는데. 근데 난 잠실에 살면서도 야구는 한 번도 보러 간적이 없어. 기회가 없기도 했고 딱히 응원하는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래? 그럼 나 이번 주 주말에 야구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저 멀리서 혜연이 급하게 달려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미리 티켓을 준비해 온 형준을 따라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의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빽빽하게 자리를 채워나갔다. 형준도 맥주 두 캔과 치킨을 들고 미리 끊어놓은 티켓의 좌석을 확인했다. 경기 시작 전 임에도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 정말 많다. 야구가 인기가 많긴 하구나.”혜연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선수들이 몸을 풀기위해 나왔고 시구를 하기위한 연예인이 등장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시구구나!”
“크큭, 야구 처음 보러 온 것 제대로 티내네. 곧 경기 시작이다. 가볍게 맥주 한 잔으로 시작해 볼까?”
사람들은 시구에 열띤 환호를 보냈고 형준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경기 관람을 위한 워밍업을 했다. 드디어 1회 초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룰을 잘 모르는 혜연을 위해 형준은 자상하게 룰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야구는 던지고 치고 뛰고 잡는 게 다야’라며 한줄 정리를 해준 것이 다였다. 혜연은 룰을 잘 몰랐지만 사람들의 분위기와 경기의 긴장감에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며 구단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이 나왔다. 사람들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목청껏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이 왜 야구장에 오는 지 알 것 같아.”
“그야 재밌으니까.”
“맞아. 재밌으니까.”
5회 말 경기가 끝났을 때 야구장의 꽃 ‘키스타임’이 돌아왔다. 가장먼저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백발의 노부부였다. 할머니는 쑥쓰러운 듯 손사래를 쳤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사람들은 노부부에게 열띤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20대 귀여운 커플이었다. 당당하게 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세 번째는 귀여운 엄마와 아들이었다. 신체보다 훨씬 큰 유니폼에 귀여운 야구모자를 쓴 아이는 엄마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혜연은 기분이 참 묘했다. 물론 야구장엔 2~30대 젊은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가족부터 연인까지 그 세대도 참 다양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건전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키스타임의 마지막 커플로 형준과 혜연이 잡혔다.
사실 둘이 함께 왔으니 카메라를 잡아주는 사람도 둘이 커플인지 친구인지 알 길은 없었다. 혜연은 놀란 마음에 손사래를 쳤으나 형준이 돌연 혜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작게 “원래 이런 데 와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속삭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보내자 혜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열띤 응원을 하는 형준과 달리 혜연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서른 넘은 나이에 주책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나 왠지 형준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경기가 끝이 나고 형준이 응원하던 구단이 승리를 얻자 형준의 기분은 더욱 좋아보였다.
“야구장 처음 와본 소감이 어때?”
“음, 재밌었던 것 같아. 다음에 오면 응원도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너도 이 매력에 푹 빠졌구나. 다음에 또 오자! 그땐 제대로 더 신나게 놀다가자고.”
“으응.”
형준과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늙음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노부부. 가족이 함께 유니폼을 맞춰 입고 목마를 타며 목청껏 응원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는 주말.
‘야구장. 참 재밌는 곳이네.’라며 혜연은 잠시 중얼거렸다.
“임신하면 태교가 가장 중요한 거 몰라? 그리고 그렇게 사람 많은 곳 갔다가 뭔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임신하면 좀 예민해진다고는 들었지만 아내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머리에서 뿔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들꽃 같던 아내는 여전히 예뻤지만 입덧을 꽤나 심하게 하더니 좀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여름휴가로 그냥 집에만 있겠다고? 그냥 주말이랑 별다를 게 없잖아. 그리고 자기도 바깥바람 쐬고 그러면 입덧도 좀 나아지고 기분전환도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고 잘 생각해봐.”
“내가 지금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내가 나 좋자고 그래? 이게 다 우리 아가 생각해서 이러는 거잖아.”
네버엔딩이다. 내가 수그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좀처럼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했고 그러는 것이 나도 편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이렇게 집에서 아내와 투덕거리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는 플로리스트다. 그런데 혹여나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하여 임신을 한 뒤로는 꽃꽂이를 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꽃들도 시들어 버리자 그냥 내다버렸고 오로지 아이를 위한 태교음악과 미술전시만 간간히 보러다닐뿐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유난 안 떨어도 된다고 하려다가 더 큰 불씨로 돌아올까 봐 말을 삼켰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하나 빵빵하게 틀지 못하게 하여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선풍기 앞에서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회사 동료 중 한명이 폭포사진을 하나 올렸다.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려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곳의 폭포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것처럼 시원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폭포의 이름이었다. ‘피아노 폭포’. 폭포가 떨어지면서 피아노 소리를 내나? 궁금한 마음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여름휴가로 가까운 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면서 집도 가까우니 한번 다녀오라는 조언과 함께. 머리에 반짝하는 불빛이 들면서 나는 곧장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자기야, 내가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시원한 여름휴가도 즐기면서 태교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이 있는 거야. 어때? 끌리지? 내일 당장 가보자. 절대 휴가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곳 같아서 그래, 이름도 피아노 폭포랑 피아노 화장실이라니까?”
아내는 내 여름휴가 집착증에 두 손을 든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피아노 폭포라는 말에 호기심을 가진 것인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야? 그치? 자기도 막상 나와 보니 기분 좋지? 집에만 있으면 아기도 심심하고 답답할 거야.”
“응, 좋네. 바깥바람도 쐬고. 근데 에어컨 좀 줄일 수 없어? 창문을 열자 차라리.”
아내는 쉬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밝은 모습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피아노 폭포는 교외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곳이 피아노폭포 인듯했다. 그런데 피아노 폭포보다 더 먼저 우리 둘의 시선을 끈 곳은 다름 아닌 그랜드 피아노 모양을 한 건물이었다. 백색의 그랜드 피아노 형식을 한 건물은 화장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수원에 반딧불이 화장실은 들어보았어도 피아노 화장실은 또 처음이다.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 선율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내는 화장실은 찝찝하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은근히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네다섯 살 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92m 높이의 피아노 폭포에 감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하수처리 방류수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폭포라는 데 꽤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에 시원하게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폭포를 보니 멀리 계곡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때? 나오길 잘했지?”
“응, 그러네. 여기 우리 아가 태어나면 또 와도 좋겠다. 아기들 노는 거 보니까 보기도 좋고. 우리아가 빨리 만나고 싶어.”
아내의 입에서 또 오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치 큰 성과를 내 회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오는 그 날에도 피아노 폭포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 같다.
딱 한잔만 더 마시고 들어갈게.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듯이 건넨 혼잣말이다. 벌 써 몇 병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는 되뇌었다. 마지막이라고. 남은 소주잔 이거 딱 한잔처럼 마지막이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어두운 실내 포장마차에 있었고 홀로 앉아있었다. 남자가 벌인 네 번째 실내 포장마차 사업장이었다. 매번 반짝 장사가 되다가 나중에는 파리만 날리는 쪽박집이 되기 마련이었다. 봄이 되면 꼭 가게를 빼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서는 건물주의 당부가 있던 날이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성실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늘 좋은 재료를 위해 새벽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대박 집과 쪽박 집을 나름대로의 계산에 맞춰 비교도 해본 그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무언가 승부수를 걸어야만 했다.
남자는 귀여운 딸아이와 예쁘고 상냥하던 아내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딱 한잔만 더 하고 들어갈게, 마지막이야.
반짝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신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식탁에는 콩나물국이 놓여있었다. 아내가 왔었나보다 생각했다. 남자는 하나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 재료인지 인테리어인지 품목선정인지. 무의식중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내가 아침상을 다 차려놓고 나간 터라 더 이상 꺼낼 반찬이 없었음에도 남자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연히 슬라이스 치즈가 눈에 띄었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 느끼한 치즈를 먹는다는 것, 다른 날 같았으면 쳐다도 안보고 아내가 끓여놓은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셨겠지만 남자는 치즈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냉장고에 있어 차가운 치즈는 입안에서 쉽게 녹지 않았다. 중얼거렸다.
‘치즈가 따뜻했으면 좋겠어’
남자는 그 순간 낙뢰가 하늘에서 번쩍 치듯 치즈 하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사업 아이템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치즈 생각뿐이었다. 좀 더 체계적인 사업 구상을 하기 위해 남자는 임실로 향했다. 남자에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치즈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 그곳엔 치즈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치즈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식부터 맛과 발효과정까지. 남자는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치즈 하나면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봄이 되면 꼭 방 빼주셔야 해요.’
건물주가 이번엔 아내를 찾아간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귀여운 딸아이와 상냥한 아내를 생각했다. 남자는 성실하게 치즈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치즈의 맛을 끝까지 살리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차별화 된 음식들이 무엇인지를.
남자는 아이들을 위한 치즈 그라탱부터 미니 피자 그리고 치즈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치즈케이크를 디저트로 만들기로 했다.
“다음 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지요.”
건물주가 웃으면서 재계약을 하러왔다. 남자는 더 이상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마지막을 되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귀여운 딸아이와 상냥한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의 가게에서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이었다.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두 시간 사십 분. 부산이라는 도시는 언제 와도 참 묘하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목에는 DSLR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내 모습은 자갈치 시장에서 이미 멋쩍게 느껴졌기에, 이번에는 휴대 전화와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은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에 올 때마다 들러 보자고 다짐했었는데,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돼지국밥이나 밀면을 먹는 게 목적인 일행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었던 발걸음이었다. 번화한 거리 너머로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는 기다란 간판과 함께 양 팔로 책을 한 아름 들고 있는 남자의 황동상이 보였다. 자갈치 시장에서 걸어서 십여 분. 드디어, 나는 아날로그의 골목에 들어섰다.
사진을 취미로 삼은 지도 십 년 쯤 된 지금, 나날이 놀라운 성능의 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서 나는 구형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하나 구입했다.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이 폴라로이드는 흑백으로 된 사진을 찍어낸다. 포토샵까지 쓸 필요도 없이 인터넷 사진첩의 보정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진을 흑백으로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쓸데없이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있다고 아내도 친구들도 바보 취급을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몇 년 전부터 나는 난데없는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써니>나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 같이 복고를 코드로 한 콘텐츠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해서였을까. 갑자기 어렸을 때 살던 동네가 보고 싶어 수십 년 만에 차를 몰아갔더니,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아, 그때 내가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 칠이 다 벗겨진 초등학교 정문이나 구슬과 딱지, 프라모델까지 팔던 문방구 같은 것들은 이미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자연스레 변해가기 마련인 것을, 내 추억을 돌려 달라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너무 늦게 과거를 돌아보려 했다는 후회와 함께 아날로그에 대한 한층 더 큰 그리움이 몰려 왔다.
“엄마, 이것 봐요! 영심이!”
낯익은 이름에 뒤를 돌아보니 여대생으로 보이는 아가씨 하나가 만화책 한 권을 가리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포켓몬스터> 세대인 줄로만 알았더니 우리 세대에나 유행하던 <영심이>도 알고 있나보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녀가 사라진 뒤, 나는 그 여대생이 가리켰던 <영심이>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부모님들 몰래 드나드는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기에 시장골목 안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던 만화 책방. 나는 매일 방과 후면 그곳에서 퀴퀴한 남자 애들과 몰려 앉아 있었다. <마징가 제트>나 <쿤타맨>같은 만화책을 읽으면 나도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 어느 새 삼십 여 년 전의 일이 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영심이>는 어느 구석에 숨어 세월을 품고 기다렸던 것일까. 어딜 봐도 빳빳하다고는 해 줄 수 없는 낡은 종이에서 나는 젖은 나무 같은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져왔다. 책방 지하에 있는 북 카페에 앉아 <영심이>를 뒤적이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추억이 그리도 반가웠는지, 꿈속에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왔다. 찐 옥수수가 든 바구니를 한 쪽 옆구리에 든 어머니가 땜방 자국이 있는 내 까까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셨다. 치직거리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뒹굴다가, 나는 또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보니 다시 북 카페 안이었다.
<80일 간의 세계일주>, <운수 좋은 날>, <달과 6펜스>와 같은 우리 세대의 필독서들이 새겨진 돌바닥을 밟다 보니 <마징가 제트>가 그려진 빨간 가방이 놓인 집도 나왔다. 하염없이 걷다가,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영심이>를 샀다.
책방 골목을 떠나기 전, 나는 이 향기로운 골목의 사진을 남기려 DSLR을 꺼내다가 고개를 저었다. 선명하고 화려한 것은 이 골목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 골목을 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조리개도, 촬영 모드 설정 기능도 없는 그 흑백 폴라로이드였다. 하얀 필름 종이에 풍경이 새겨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삼십 년 전의 어머니와 함께 걷던 바로 그 골목이 환상처럼 새겨지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토요일, 이월드에 가는 날이다. 꼬박 한 달을 준비하고도 자꾸만 뭔가 아쉬워서 결국 어젯밤에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세수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눈 밑이 시커멓다.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는 머리를 매만지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데이트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단장은 해서 뭐하겠는가.
내 이름은 유현주, 스물세 살, 휴학 후 대학에서 알게 된 언니가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중. 하지만, 오늘의 직업은 젊은 예술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 시간이 오면 내가 항상 반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예를 전공할 생각은 없었다.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취미일 뿐 내 장래희망은 심리학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틈날 때마다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었고, 지금은 유명한 수도권 사립 대학교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잠도 줄이고, 코피를 수십 번 쏟아가며 수험 생활을 견딘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다.
그러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에도 변화는 없었다. 나는 틈만 나면 팔찌나 머리끈, 선물상자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자질구레하다고는 해도, 십 년 가까이 갈고 닦은 솜씨라 ‘예술 전공해도 되겠네!’라는 농담을 종종 듣기도 한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역시 아쉽기는 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우울한 날이면 어김없이 공예를 전공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코스터처럼, 내 안에서 심리학과 공예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언니가 자리를 비울 때면 틈틈이 공예품들을 만들곤 했는데, 단골로 가게에 드나들던 여고생들 중 하나가 여기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우와, 언니. 이것도 파는 거예요?”
“아, 아니요. 이건 제가 그냥 취미로 만드는 건데…….”
학교가 아닌 곳에서 칭찬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만들던 팔찌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다음 날 그 아이가 친구들을 더 데려왔다.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는 아이도 있었고, 그냥 여기서 팔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그 때는 가게에 언니가 있어서, 자칫 곤란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언니의 표정을 살폈는데, 언니는 ‘그런 재주가 있으면 말을 해 주지 그랬어.’라며 웃었다. 알고 보니 언니도 학생 때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셨는데, 장사를 하시느라 그림을 그리지 못한 지 꽤 오래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로 내가 만든 팔찌를 진열장에 올리고, 그걸 팔아서 나오는 수익은 내 몫으로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현주랑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어딘가 했더니 놀이공원이었다. 웬 놀이공원인가 하면서도 저녁 시간까지 유채꽃밭과 우방타워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해 질 무렵이 다 되어서 언니가 나를 데려간 곳이 바로 젊은 예술 거래소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프리마켓을 연다고 했다.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굉장한 사람들만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 머리띠를 만들어 파는 사람, 나처럼 팔찌를 팔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언니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예술이란 게 뭐 별거 있겠어?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남들이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술가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 곳에서는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기억할만한 걸작을 남길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무언가를 남길 수는 있었다. 젊은 예술가들의 거래소. 젊은 예술가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기분이 좋다.
묵직한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서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제법 예술가 같아 기분이 좋았다. 컨버스를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오늘 날씨도 맑음, 바람도 선선함. 모든 게 다 완벽하다. 나는 오늘, 젊은 예술가다.
산은 그저 산일뿐이야.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산이라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몰라? 이런 논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결혼을 약속한 둘이 유일하게 말다툼이 시작하는 곳 바로 산이다. 남자는 산이 좋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으면 하는 여자의 바람이 그리 욕심인 걸까? 여자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였으나 남자의 산사랑 만큼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악몽 같던 첫 데이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둘이 소개팅을 하던 날 여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
“취미가 뭐예요?”
“등산이요.”
남자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는 무심코 던진 돌에 반응하는 개구리처럼 번뜩였다. 등산이라는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일반적인 취미 중 하나였으므로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겨지기 쉬웠으나 남자의 등산사랑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었다.
여자는 어쩐지 남자의 체구가 더 탄탄해보였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자기관리 하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등산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하겠지만 그때의 남자는 듬직하고 씩씩해보였다.
“그럼, 막 높고 험한 산들도 잘 타시겠네요?”
“그럼요, 언제 한 번 같이 등산 가실래요?”
그렇게 둘의 첫 데이트는 등산이었다. 보통 연인들처럼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자기 한입 나 한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렇게 도란도란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계절을 생각하지 못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은 멋있었으나 그 현장에서는 발이 푹푹 빠졌으며 몇 걸음 안가 금세 체력이 바닥이 나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등산이라고는 동네 언덕배기 정도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 전부였던 여자에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험준한 산행을 한다는 것은 더욱 체력소모가 큰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였다면 벌써 징징거리며 내려가겠다고 떼를 썼겠지만 명색이 첫 데이트에서 내려가겠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저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는 남자에게.
어느새 여자는 조금씩 뒤쳐졌고 조금 쉬었다 가자는 말도 잦아졌다. 여자는 내색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표정에서 지치고 짜증이 섞인 표정이 새어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심경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연신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이야, 정말 멋있지 않아요? 이건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한다니까. 제가 이래서 산을 끊을 수가 없어요.”
“네, 그러네요...”
남자는 여자가 이와 비슷한 어조로 대꾸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자는 달랐다. 여자의 눈에 산은 그저 산이었고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그제야 여자의 마음을 눈치 챈 남자는 서둘러 여자의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오늘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정상에 쌓인 눈처럼 쉽게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요. 정말.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저도 여기는 처음 와본 곳이라.”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제가 산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남들은 산을 정복했다는 묘미나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었다는 마음에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르거든요. 뭐랄까. 숨이 차는 느낌이 좋다고 할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정말이지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나뭇가지에 고스란히 쌓여있는 눈과 흙과 솔방울을 밟을 때 사박사박 내는 소리. 그런 게 좋아요.”
남자는 제법 진지했고 남자의 말을 듣는 여자는 더욱 진지했다.
“산, 산, 산! 이번엔 또 어떤 산인데?”
“너와 처음 갔던 곳, 그곳에서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