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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이자 희생과 나눔의 공동체 역사를 태동시킨 광주 정신의 발현지로 기억되는 남구는 양림동 일대를 중심으로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이라는 멋들어진 고택을 품고 있어 이곳이 과거 부자 동네였음을 알리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문화의 전당이자 시민운동의 산실인 오웬기념각 등 볼거리가 인근에 산재하고 있다.
1985년 2월 25일 광주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1398년(태조 7)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교육과 백성의 교화를 위하여, 서석산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88년(성종 19)에 홍수로 현감 권수평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현재 건물은 후에 중건한 것이며 봄, 가을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 1985년 2월 25일 광주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1398년(태조 7)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교육과 백성의 교화를 위하여, 서석산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88년(성종 19)에 홍수로 현감 권수평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현재 건물은 후에 중건한 것이며 봄, 가을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
주소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22-3
연락처062-672-7008
1989년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양림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0년대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정면 8칸, 측면 4칸의 일자형 팔작지붕 집으로 동향이다. 독립운동가 최상현의 집이었으며, 다락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켰다고 전한다. 이장우 가옥은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으나, 최승효 가옥은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1989년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양림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0년대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정면 8칸, 측면 4칸의 일자형 팔작지붕 집으로 동향이다. 독립운동가 최상현의 집이었으며, 다락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켰다고 전한다. 이장우 가옥은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으나, 최승효 가옥은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주소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166-19
연락처062-233-9370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구한말 상류층의 호화로움과 품위를 잘 보여준다. 넓은 마당과 아기자기한 정원이 잘 어우러져 운치를 자아내는 이장우 가옥에서는 2009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으며,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촬영지로도 등장한 바 있다.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구한말 상류층의 호화로움과 품위를 잘 보여준다. 넓은 마당과 아기자기한 정원이 잘 어우러져 운치를 자아내는 이장우 가옥에서는 2009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으며,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촬영지로도 등장한 바 있다.
주소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128
연락처062-233-9370
광주 지역 최초의 2층 건물로,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과 그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1904년 세워졌다. 예배와 집회, 성경학교 등 다용도로 활용되며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로 떠올랐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을 고취하는 설교가 행해지기도 했다. 현재 기독간호대학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남녀 출입문을 따로 만든 양식 등이 특이하다. 광주 지역 최초의 2층 건물로,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과 그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1904년 세워졌다. 예배와 집회, 성경학교 등 다용도로 활용되며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로 떠올랐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을 고취하는 설교가 행해지기도 했다. 현재 기독간호대학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남녀 출입문을 따로 만든 양식 등이 특이하다.
주소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연락처062-940-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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