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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지역강원도 양양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프롤로그
    • 1.쌍무지개가 뜨는 문이 있다고?
    • 2.번뇌를 잊게 하는 종소리
    • 3.사천왕의 무서운 얼굴 뒤에 숨겨진 진실은?
    • 4.신비로운 이야기 속으로
    • 5.꿈이 이루어지는 길
    • 6.해수관음상 복두꺼비를 찾아라!
    • 7.의상대에 서서 풍류시인이 되어볼까?
    • 8.홍련암 구멍을 내려다보면 보인다는 그것!
    • 에필로그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강원도 양양군 -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망울에 못 이겨 떠난 여행이라면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고즈넉한 대자연 속 산사를 거닐며 진정한 나를 돌아보는 여정은 어떨까요? 강원도 양양에는 숲과 맑은 동해바다, 바람소리마저 정겨운 천년고찰 낙산사가 있습니다. 홍예문을 지나 원통보전, 해수관음상, 그리고 홍련암까지 천천히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밟아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야말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있는 낙산사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라!

    먼저 속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 홍예문을 지나야 한다. 조선 시대의 강원도 26개 고을에서 26개의 화강암을 모아 만들었다는데, 그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홍예문? 무지개 홍(虹)에 무지개 예(霓)를 써서 홍예문인데, 이름에 무지개가 두 개나 들어갔으니, 해석해 보면 ‘쌍무지개 뜨는 문’이잖아?”

    “아, 이것 좀 보세요. 돌이 두 줄로 놓여 있어요! 아치 모양이 두 겹이니, 두 개의 무지개구나! 무지개 아래를 지나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향해 간다니 정말 멋져요!!”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범종각에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소리에 귀기울이면 들릴까?

    “이건 범종각이구나. 이 종을 치는 시간 동안에는 속세의 번뇌가 사라진다는데, 2005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이 완전히 복원 된 모양이야.”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주 큰 화재였다는데, 다행이네요!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걱정 고민이 사라지는 느낌이예요. 마음이 점점 편해지는데요?”

    불법(佛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모셔진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 발아래 놓인 동전과 지폐들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사천왕은 매우 정의로운 분들이라는데, 조금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네요? 이곳에 떨어진 동전과 지폐들은 누가 흘리고 간 건가요?"

    "일종의 수고비랄까? 사찰을 지키면서 새부대중을 돕는다기에 사람들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지."

    원통보전 앞의 7층 석탑에 도착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는 길’도 바로 코앞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숨겨진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데?

    “탑 속에 수정염주와 여의주가 있다죠? 더 이상 소실되는 일이 없도록 이 보물들이 낙산사를 지켜주면 좋을 텐데.”

    “문화재로 지정된 이곳 담장도 정말 특이해. 암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아 만들고 원형의 화강석을 중간중간 배치했다는구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드디어 시작됐다. 작은 돌 하나를 주워들고 이곳 돌탑 위에 내 작은 소원 하나도 함께 올려보자. 어떤 소원을 빌어볼까?

    “아직은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요. 돌아오는 길에는 멋진 소원을 빌 수 있을까요?”

    “꼭 멋지고 커다란 소원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을까? 낙산사를 마음이 점점 맑아지며 차분해지고 있으니, 여기를 다시 지날 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원을 빌 수 있을 거야.”

    3대 해수 관음성지로 일컬어지는 16m의 웅장한 해수관음상을 만난다. 이 앞에 놓인 복전함 밑에는 전설의 동물 두꺼비 삼족섬이 있다는데?

    "해수관음상이 부산 해동용궁사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요! 그런데, 관음상 앞에서 참배하는 사람들이 쓰다듬는 두꺼비상, 다리가 3개인 까닭은 뭘까요?“

    “세발 달린 두꺼비가 복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니? 2개의 발과 항문으로 난 뒷다리를 가진 이 두꺼비는 돈을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아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어.”

    의상대사가 좌선했다는 의상대는 해안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즐겨 찾았다고. 이곳에서 시 한 수 읊조리며 풍류를 즐겨보자!

    “천지개벽이야 / 눈이 번쩍 뜨인다 / 불덩이가 솟는구나 / 가슴이 용솟음친다 / 여보게 / 저것 좀 보아 / 후끈하지 않은가.”

    “갑자기 왠 시예요?” “시조시인 조종현이 의상대에 서서 해돋이를 보며 읊조렸던 명시였지.“

    홍련암 마루바닥에 난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자. 관음굴의 모습에서 용의 꿈틀거림이나 부처의 얼굴이 보일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그 모습을 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용의 형상이나 부처상은커녕 바위틈새로 파도치는 모습과 해조음밖에 들리지가 않아요. 여기까지 왔는데 구멍 앞에서 절이라도 해볼까요?”

    “마음의 문을 열고 관세음보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그저 구멍만 쳐다보고 절을 한다고 보이겠니?”

    창건 이래 수차례 소실의 위기를 맞기도 한 낙산사지만 여전히 ‘꿈이 이루어지는 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산사길 어디로 향하든 그리 어려운 걸음은 아닐 겁니다. 천천히 산속을 걸어가며 돌탑 위에 아름다운 소원을 올려놓고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나 자신, 진정한 나를 돌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집착과 애착을 떨쳐야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당신은 낙산사에서 무엇을 얻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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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선 따라 땅끝까지

    능선 따라 땅끝까지

    지역전라남도 해남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능선 따라 땅끝까지

    • 프롤로그
    • 1. 먼 듯 가까운 ‘땅끝’
    • 2.보리밭의 여운
    • 3.숲속 돌담집에는
    • 4.자연과 어울려
    • 5.흑석의 위용
    • 6.신선한 충격
    • 7.쉬엄쉬엄, 느릿느릿
    • 8.좌절하지 말고
    • 에필로그

    능선 따라 땅끝까지

    - 전라남도 해남군 -

    해남을 말하면 하나같이 ‘땅끝마을’부터 내뱉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라남도에서 이 지역을 간판스타로 만들어준 단어인 만큼 여행객 대부분이 새로운 삶의 전기를 찾고자 ‘땅끝마을’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도 이곳으로 간다면, 가학산 능선코스로 방향을 전환해보는 시도는 어떨까요? 세상과 부딪쳐 포기하고 싶다가도 남루해진 몸을 추스르게 만드는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땅끝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오로지 당신의 몫. 그러나 <트래블아이>는 해남으로 향하는 당신께 미션을 던져봅니다. ‘가학산에서 땅끝을 만나라!’

    둘러볼만한 명소가 많은 해남은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인식으로 그저 ‘먼 여행지’라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해남은 결코 멀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KTX 광명역에서 이렇게 접근성이 뛰어날 줄은 미처 몰랐어. ‘땅끝’만 생각하다 보니 멀게만 느껴서일지 모르겠군.”

    “대부분이 그런 오해를 하지.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강남순환고속도로, 광명~수원간 고속도로, 신안산선 등 수도권에서도 최적의 접근성을 갖추고 있다는 거.”

    마산면 산막리에 이르자 가학산을 배경으로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에 젖어들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고향 마을의 추억을 되새겨보게 하는 마을이야.” “청자빛 투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진초록 보리밭을 보니 더 그러하군.”

    “마을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야.” “그보다도, 자연과의 어울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아.”

    트레킹 중 만나는 숲속의 돌담, 여러 동의 숙소마저 정겨운 가학산자연휴양림은 황토 벽돌집부터 원숭이 가족 등 TV에 누차 방영된 바 있는 만큼 흥미가 저절로 간다.

    “여기는 웰빙 숙박시설로 소문이 나면서 평일에도 숙박객이 끊이지 않는다더군.” “편백나무 산림욕장을 비롯해 가학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이용한 수영장 등도 갖추고 있다니, 가족과 함꼐 또 한 번 찾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구나.”

    “맞아. 요즘 조류관 등을 설치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

    매월 예약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이곳 야영장은 막상 마주하면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야영시설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데?

    “취사장과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은 그나마 갖추고 있는데, 데크나 샤워장은 없네. 게다가 바닥은 파쇄석으로 되어 있고 말이지. 심지어 전기시설도 사용할 수 없다는군.”

    “하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보면 어떨까? 한편으로는 이곳이야말로 진짜 자연을 배우고 자연 속에 동화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산세가 학이 나는 듯하다 이름 붙여진 가학산은 기암괴석과 철쭉이 조화를 이루는 명산으로 꼽힌다. 이 산을 ‘흑석산’이라고도 칭한다는데,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

    “비 온 후 물을 머금은 가학산 바위는 무슨 색을 띠는지 알아?” “바위가 비에 젖어봤자 또 다른 색을 띠겠어? 네 질문부터 틀렸군.”

    “나도 아직 보진 못했지만, 검게 그을린 듯 보인다지.” “신기하군. 게다가 가다 보면 어느 능선에 오르면 마치 학을 타고 비상하는 듯도 하다지?”

    밀렵이 판을 치는 요즘 산에서 꽃뱀 한 마리만 마주쳐도 반갑다. 가학산은 아프리카의 사파리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이곳에 원숭이가 살고 있을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예전에 여기서 나무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 원숭이를 봤었어. 목에 사슬도 없고 철저히 야생에 의존하는 이곳 원숭이는 일본원숭이보다 강인한 생존능력을 가진 종자일 게 분명해.”

    입구를 지나 잔디밭쉼터∼학운정∼정상∼해도정∼맹선재∼물치기미쉼터까지 장장 5km의 산행코스는 주춤한 사이에도 잊지 못할 풍광을 내어준다.

    “길이 갑자기 쉬워졌다고 빨리 걷는 건 지양해야 해. 천천히 걷는 길에서는 그만큼의 볼거리가 가학산에서는 분명 있을 테니까.”

    “정말이네! 꼬불꼬불 예쁜 오솔길이 오롯이 나 있어.” “하하~ 완만한 이 길은 마치 우리에게 쉬엄쉬엄 가라며 배려하는 것 같지?”

    맹선재를 지나면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 뒤에는 곧 시야가 확 터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상이 금방이다. 막판 스퍼트를 내보자!

    “이 능선길 코스 가장 끄트머리에서 어떤 경관을 보게 될까 그 생각만 하면서 왔는데, 고생 끝에 이런 천혜의 낙원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기가 소안도지? 저쪽에 보길도랑 노화도까지 전부 보여! 해남의 진정한 묘미로세!” “쾌청한 날씨에는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날씨가 꾸물꾸물하구먼.”

    가학산 능선길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한 장구 모양의 잘록한 허리를 가진 소안도를 비롯해 보길도와 노화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의 장난감 걸린 듯한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땅끝의 진면모를 느끼고 싶다면 가학산으로 향하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흑석의 위용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철쭉과 오솔길의 매력을 모두 품은 능선코스를 직접 밟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오롯이 품은 가학산에서 여러분이 만난 해남의 땅끝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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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숨소리를 따라 걷다

    역사의 숨소리를 따라 걷다

    지역울산광역시 중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역사의 숨소리를 따라 걷다

    • 프롤로그
    • 1.치열함이 흔적처럼 남은 자리
    • 2.성터의 흔적만이
    • 3.호국영령의 얼이 흐른다
    • 4.숭고한 얼을 기리는
    • 5.적막함이 감돈다
    • 6. 느린 걸음으로 역사를 돌다
    • 7.골목문화 엿보기
    • 8.잊히지 않아야 할 역사
    • 에필로그

    역사의 숨소리를 따라 걷다

    - 울산광역시 중구 -

    울산의 중심 중구는 역사적 현장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곽들이 특히나 많은데, 온전히 그 모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치열한 전투가 벌여지던 곳 깊이 박힌 두려움과 강한 투지가 엿보이기에 그 일대의 흔적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보금자리를 지키려고 목숨 바쳐 싸운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서려있는 이번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치열함을 대신하는 고요한 적막을 따라 걸어보자’입니다.

    조선 태종 17년(1417)에 쌓은 병영성은 600여 년의 역사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지금은 옛 성터의 돌들에서 역사의 흔적을 바라봐야 하는데, 옛 성벽의 위엄을 느낄 수 있을까?

    “자, 이제 이 지하차도만 지나면 나온단다. 저기 이정표 보이지? 600년 역사의 병영성이 있는 곳이라고 쓰여 있는 것 말이야.”

    “아빠, 그런데 다른 유적지와는 다르게 도로와 상가 주변에 성곽이 위치해 있다고요? 높은 성벽도 안 보이는걸요?”

    중구 서동의 아파트단지와 여러 건물들 가운데 위치하여 위태롭게 성벽의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는 병영성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

    “병영성은 원래 구릉정상에 포곡형 성으로 태종 17년(1417)부터 고종 31년(1894)까지 남아 있었단다."

    "높이가 무려 12척이나 되던 병영성은 전쟁으로 인해 성벽이 허물어져서 그렇단다. 이렇게 허물어진 성벽 또한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된단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렴.”

    고려 때부터 군사가 주둔하던 진을 설치하였다가 1415년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의 주둔처가 되었던 병영은 육지로 상륙하는 왜적을 막았다는데?

    “여기서 10여 분만 더 가면 울산 왜성이 있어. 울산왜성은 선조 30년(1597) 때 왜적이 울산읍성과 병영성 성곽을 헐어 급조한 성으로 두 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나 쉽게 물러서지 않았던 곳이란다."

    "울산 왜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당시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고 위패를 모신 충의사가 있단다.”

    울산 왜성 인근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왜군과 치열한 격투를 벌인 애국지사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가 자리하고 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에 치솟던 마음이 낮아진다.

    “점령당한 병영성을 탈환하기 위해 기습전을 펼치고 왜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여 공을 세운 울산 의사 239분의 위패와 통합 위패 '무명제공신위'가 함께 봉안되어 있단다. 창의문을 지나면 나오는 이곳이 상춘문이란다.”

    “너무 적막해서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어쩐지 엄숙하기도 하고요.”

    울산을 점령하려고 서슬 퍼런 눈빛으로 침약을 한 왜군을 상대로 당당하게 싸워 왜적을 격파한 선현들의 투지를 보고 배운다.

    “물론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찾는 것이 맞단다. 그럼 충의사 건물 안에는 당시 치열했던 전투 당시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당시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와 설명도 곁들여 놓은 곳으로 가볼까?”

    “와, 그럼 역사를 이해하기 좀 더 쉬울 것 같아요.”

    울산읍성 둘레길은 울산의 중심 건물과 역사적 현장을 중심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걷기 코스다.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역사를 돌아볼 때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모처럼 역사탐방을 목적으로 여행을 왔으니 울산읍성 둘레길도 돌아보는 게 어떠니? 울산읍성은 중구의 중심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어서 중구 탐방도 되고 골목문화를 엿볼 수도 있단다. 그곳에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역사와 문화를 발견할 수 도 있으니 가볼까?”

    “네, 좋아요!”

    울산읍성 둘레길 곳곳에는 울산 중구의 골목문화가 깃들어 있다. 옛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골목풍경에 잠시 추억에 젖어 들어볼까?

    “우와, 정말 좁은 골목들이 있네요. 우리 동네에는 이런 골목들이 없잖아요. 아파트 단지 사이는 있어도. 그렇죠?”

    “그래, 아빠 어렸을 때에는 다 이런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곤 했단다. 아빠 어렸을 때가 생각나는 골목이야.”

    낡고 허물어져 희미해진다 해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다. 허물어진 성벽은 복원되고 희미해진 역사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시금 선명해진다.

    “아빠, 아까 본 병영성이나 여러 성곽들은 허물어진 채로 그냥 두고 있어요? 그래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녀석, 걱정할 것 없단다. 복원을 준비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역사를 나누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허물어진 채로 있지만은 않을 거야.”

    호국영령의 넋이 잠들어 있는 유적들을 돌아보면 절로 두 손이 공손하게 모아집니다. 모두가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높이 고개를 들고 있는 시대에 울산 중구의 성곽과 둘레길은 고개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주지요.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차 한 없이 솟아오른다면 왜적에 대항한 의사(義士)들이 애국정신으로 맞서 싸운 현장을 보존하고 복원하는데 힘쓰며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 울산 중구에서 느린 걸음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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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지역경상남도 거창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프롤로그
    • 1.지혜의 담장
    • 2.담백한 멋
    • 3.너와 나의 어울림
    • 4.쉬이 가기 힘든 마음
    • 5.집안의 숨은 내력
    • 6.암반에 서린 기운
    • 7.시 한수를 새기다
    • 8.시 한수를 새기다
    • 에필로그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경상남도 거창군 -

    경남 거창의 거창신씨 집성촌 황산마을은 경사가 조금 있는 위천면 평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수백 년 전 지어진 한옥들이 들어차 고풍이 넘치고, 운치 있는 옛 돌담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입니다. 게다가, 누각 처마 밑으로 펼쳐진 수승대를 보면 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풍류시인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담벼락을 따라가며 듣는 이야기에 하루가 부족할 판이라 이곳은 한옥 민박체험 시설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황산마을에 머물며 예스러움을 엿들어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방문객을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담장이다. 흙과 돌 만든 토석담인데, 이때 담장 아랫부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기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여기를 봐! 흙 메우기 없이 돌만 얹어놓았어. 태풍이라도 오면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 비가 많은 거창의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아~ 한번씩 마당을 물바다로 바꾸는 비가 빠져나갈 일종의 배수구인 셈이로구나.” “맞아. 이걸 메쌓기라고 부르지.”

    담장은 대체로 무늬 없이 담백하다. 하지만 택호가 대과댁인 고가의 담장을 보면 유독 장식이 가미되어 눈길이 간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단언컨대 실망스러워. 1㎞가 넘는 이 길이에서 토석담 또한 등록문화재라지만 꽤 단조롭고 말이지.”

    “수키와와 암키와로 꽃잎을 표현한 이곳 꽃무늬 담장을 봐봐. 문화해설사 말로는, 과거 전 문화재청장이 이 마을을 돌다 꽃무늬를 발견하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지.”

    황산마을은 담장 높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 담벼락 대신 ‘너와 나의 어울림’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 담벼락만 봐도, 공간을 구획하고 최소한의 사생활만 보호할 뿐 단절을 철저히 피한 구조야. 단순히 고택들이 모인 마을이 아니라 친족 공동체로 엮여 있기에 가능하겠지?”

    “옆집에 아재가 살고, 그 뒷집에 조카가 있어 애써 차단용 울타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겠지. 손 시린 바람에도 이 길목에서만큼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니?”

    지금은 민박촌으로 바뀌어 언제든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황산마을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터를 잡은 거창 신(愼)씨의 집성촌이다.

    “어림잡아 한옥 수가 60~70채쯤 되겠어.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당시 건립된 집들이 많아.”

    “하지만 여기가 18세기 중엽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해온 집성촌이라는 사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그래서 그런가, 이 마을의 역사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

    특히 가장 잘 보존된 집 역시도 신씨 고가가 꼽힌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고택은 500여 년 역사 외에도 눈이 휘둥글해질 만한 자랑거리가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 이곳 목조건축물을 들여다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위, 경제력을 이해하게 되지.”

    “맞아. 하지만 이 집의 숨은 내력은 따로 알아봐야 해. 여기서 13대 요수 신권의 손자 신당이 6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 가운데 절반이 거물급 인사라는 거야. 정말 대단하지?”

    거북바위를 닮은 수승대로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시간이 멈춘다. 저 멀리 요수정도 시야를 막는 자태가 드러날 것이다.

    “노송 가지는 묵묵히 겨울과 싸우고, 얼음 낀 계곡도 지지 않고 물소리로 호응하고…. 거북바위 사면엔 암반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구나.”

    “거북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쪽을 봐봐. 뻥 뚫린 굴이 보이니? 스승이 햇빛을 피해 여기에 앉아 후학의 글을 심사했다고 전해지지.”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경삼남도 거창 위천면의 황산마을에 부쩍 관심을 보이거나 찾아드는 발길들이 요즘 더욱 잦아진 듯합니다. 이는 아마도 남사예담촌에 이어 경남에서 두 번째로,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돼 그 소문이 십리 밖까지 퍼져나간 게 분명합니다. 화려한 한옥촌을 기대하면서 달려간 황산마을의 고가(古家)는 되레 소박하고 심심한 쪽에 가까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을 역사를 품은 수승대의 비경이 더해지면 황산마을의 백미를 알게 됩니다. 마음 비우고 찾아들기 더없이 좋은 황산마을로 떠날 준비가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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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지역전라남도 고흥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 프롤로그
    • 1.화합과 소통의 다리
    • 2.고난을 저울질해 보려거든 그곳에 가라
    • 3.비토의 눈물
    • 4.옹벽에 그려진 ‘한센인의 꿈’
    • 5.아픔 서린 단종대
    • 6.낙인 그리고 완전한 격리
    • 7.중앙공원의 어제와 오늘
    • 8.주인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천국
    • 에필로그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섬 소록도

    - 전라남도 고흥군 -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해 이름 붙여졌지만, 실제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섬의 면적은 15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육지와 연결하는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소록도는 더이상 외롭고 쓸쓸한 섬이 아닙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 고난과 영광의 소록도 소록도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라!

    소록도로 향하는 길. 2009년 완공된 소록대교 다리 위엔 하늘 높이 길쭉하게 솟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상징이 눈길을 끈다. 무엇을 의미할까?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의 애환이 깃들어 있어. 그때는 최대 6천여 명이 살고 있었지. 지금은 약 600명 환자가 ‘기도의 용사’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지만 말이야.”

    “소록도는 이제 외롭고 쓸쓸한 섬이 아니군요. 저 다리를 보세요. 일반인과 한센인이 한마음으로 화합하고 소통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 듯해요.”

    소록도에 처음 교회가 생긴 때는 1922년 10월. 2대 원장으로 부임한 일본인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구북리교회가 창립됐다. 이후 12년간은 태평성대였다.

    “1934년 성결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소록도 기독교’라 개칭하면서 일제의 만행에 따른 탄압도 시작됐어. 41년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면서 주일이면 더욱 심한 중노동을 시키는 등 교회에 대한 일제의 만행은 더욱 노골화됐지.”

    “하지만 이곳에 교회들이 계속 생겨났잖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이곳 소록도가 한센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이던 1910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시립나요양원을 세우면서부터다. 그들의 한서린 세월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957년 비토리에서 일어난 한센인 집단학살사건을 알고 있니?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마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겠지.”

    “아름다운 섬 비토에 그런 숨은 핏빛 이야기가 있었다니. 너무나 안타까워요.” “본격적응로 알려진 건 2005년이야. 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도 많지가 않지.”

    소록리 국립소록도병원 쪽으로 가면 옹벽에 길이 110m로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어떤 메시지가 표현돼 있을까?

    “한센인들의 아픔과 희망을 새긴 걸까요?”

    “아마도. 그러면서 벽화엔 소록도의 과거·현재·미래가 담긴 듯하구나. 소록도의 아픈 과거는 단종되는 아기 사슴으로, 밝은 미래는 초원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아기 사슴으로 말이야. 야물게 참 잘 만들어졌지?”

    천형(天刑)의 낙인이 찍힌 한센인들을 소위 ‘문둥이’라 했다. 일반인과 격리된 그들만의 세상에서도 일제는 강제로 단종수술 등 인권유린의 아픔을 겪었다.

    “일제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전염 방지를 목적으로 소록도를 거주지로 마련해줬지만,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서만 삶의 터였을 뿐, 주검이 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었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검시실, 감금실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의 빨간 벽돌 건물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져요. 검시실에 들어가니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도 철저한 통제와 억압 속에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을 대표하는 장소가 국립소록병원 입구 수탄장(愁嘆場)에 있다. 말 그대로 탄식의 장소이다.

    “과거 한센병 환자는 병사지대와 직원지대 사이에 있는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해. 전염될까 손을 잡지도 못하게 해 눈물만 흘리며 서로를 마주보았을 그들의 모습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묘한 대조를 이루지.”

    “부모자식이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눈으로만 상봉해야 했던 광경이 눈에 선해요.”

    일제 강점기에 환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만든 중앙공원에는 적송, 백송, 편백나무 등이 조경이 잘 가꾸어져 있다.

    “유한양행의 상징이 된 설송도 이곳에 있구나. 소록도에 기부를 많이 한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이 나무를 보고는 안티푸라민 뚜껑에 광고로 사용했다지.”

    “고흥반도 남쪽 끝 녹동에서 약 500m 거리의 이 섬이 갖는 슬픈 사연 뒤에 소소한 사연들도 참 많네요.”

    아직도 6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에 아름다운 이름과는 상반된 무거운 공기도 아직 감돌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00년 역사를 안고 있는 소록도에 2009년 소록대교의 개통으로 육로로 접근가능해지면서 이제 한 해 다녀가는 관광객이 50만 명을 넘는다죠?”

    “전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자연관광을 하러 오는 대중들 사이에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방증이겠지?”

    믿는 사람의 눈은 역경 속에서도 빛이 납니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공존하는 땅 소록도 사람들의 눈은 그래서인지 유독 사슴의 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고난은 앞으로 받을 영광에 비하면 큰 바다에 떨어지는 잉크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말도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소록도를 보고 여행의 의미를 다시 깨닫기도 합니다. 여행은 경치 좋은 곳만 찾아 구경하는 게 아닌, 과거를 돌이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임을 말입니다. 소록도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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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지역서울특별시 도봉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 프롤로그
    • 1.영험한 기운의 은행나무 고목
    • 2.“비나이다~ 비나이다~”
    • 3.때로는 혹한의 시련도
    • 4.800년 고령 나무의 비밀 뒤에는
    • 5.원당샘을 국내 최고라 말하는 이유
    • 6.미네랄 샘물로 자생하는 공원
    • 7.도봉동문으로 가면!
    • 8.우러러 사모하다
    • 에필로그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 서울특별시 도봉구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 도봉을 두고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각별한 저항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건, 현대문학의 거장 故 김수영 시인의 발자취가 방학동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관에서 시작해 원당공원에 이르는 ‘김수영 거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에는 오랜 명맥을 이어온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뭘까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에서 바로 그 특별함을 만나라!‘입니다.

    연산군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한 아파트단지 안에는 주민들이 영물로 떠받든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뭔가 범상찮은 기운의 이 나무, 찬찬히 살펴보자.

    “키가 10m는 더 돼 보이지? 이 자리를 얼마나 지키고 서 있었던 걸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오랜 기간 이곳을 지나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햇살을 통해 그대로 비추어주는 듯해. 이 고풍스러운 자태, 정말 멋져.”

    “한때 아파트와 오른편 빌라에 막혀 뿌리, 가지가 뻗지 못해 나무색깔이 변하기도 했다지.”

    이 고목은 예부터 나무에 빌면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령수로 통하는 신통방통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일까?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가지에 불이 붙었다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에도 갑자기 불이 났대. 믿겨지니?”

    “믿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아래로 처지는 저 가지가 바로 아들을 점지해주는 기운이 있다는데. 어쨌든 이 지역 명물인 건 분명해.”

    이 영험한 나무에도 시련은 닥친다. 1990년대 주변에 아파트 대단지와 빌라촌이 들어서면서 생육에 지장을 받게 된 것인데? 당시를 회상해보자.

    “처진 나뭇가지에 지지대를 세우고 병충해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도 4차례나 받았어. 도봉구는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나뭇가지를 가로막던 빌라 2동의 12가구를 매입해 철거도 마쳤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지역이 모두 하나로 똘똘 뭉친 거구나! 정말 대단해.”

    사실 이 고목은 가뭄 때 마르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아 수맥을 이룰 수 있었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재 이곳의 두 번째 특별함이 정체를 드러낼 순간이 온 것 같은데?

    “여기가 바로 연산군묘야. 여기서 왼편에 보면 600년 전부터 식수로 사용한 우물이 있어.” “와! 이번에는 600년이야?”

    “그래. ‘원당샘’이라는 우물인데, 8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은행나무가 건강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 우물의 수맥이 이어진 덕분이라는 거야.”

    수백 년간 방학동 사람들의 생활용수로 사용됐던 원당샘물은 건강에 좋기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시중 생수와 비교해 어떤 면에서 뛰어난 걸까?

    “일단 맛만 봐서는 여느 생수 맛이랑 다른 점은 못 느끼겠는데?”

    “미네랄 함유량이 훨씬 높다는데, 맛으로 그 차이가 느껴지겠어? 미네랄 함량은 칼슘과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등 성분으로 측정하는데, 마그네슘은 물에 녹아 있는 경우 특히 인체에 쉽게 흡수되지. 충분한 양의 미네랄을 섭취하면 어디에 좋은지 알고 있니?”

    원당샘 주변은 역사문화 탐방에도 제격이라는 자연친화적인 원당샘공원이 자리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공원에 들어서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파평 윤씨 일가가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이 샘도 ‘원당샘’으로 명명했다지. 근데 2009년에는 샘물도 말라서 흐르지 않다가 이를 복원했어. 지금 이곳에는 원당샘공원도 생겨났지.”

    “와~ 이런 곳에 전통연못부터 꽃담, 사모정까지 다 있네.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식물들이 모두 원당샘물로 자생하고 있구나!”

    도봉산은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명산의 자태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이라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많다느데?

    “도봉산이 북한산이라 불리게 된 건 조선조 중종 때라고 해요.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죠.”

    “이야~ 그런 사실은 처음 알았는걸. 2천 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이 이곳에 있겠구나!” “옛 풍습을 되살리려는 도봉사람들이 이곳은 어떻게 가꿔놓고 있는지 궁금해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다 보면 수려한 경치에 둘러싸인 계곡과 그 인근에 의미심장한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띤다. 그곳으로 가보자.

    “이건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귀로구나!” “정말! 가만, 여기는 또 곡운 김수증 선생 글씨가 있어요!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 누구를 사모하기에 이렇게 새긴 걸까요?”

    “조광조의 학덕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새긴 거지. 또 어떤 글귀들이 남아 있나 살펴볼까?”

    김수영 시인의 ‘풀’은 과연 어떤 이름의 풀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무명초라고 하지만 사실 이름 없는 풀은 별로 없습니다. 단지 그 이름을 모를 뿐입니다. 김수영 시인 역시도 무슨 풀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의 ‘풀’은 바람에 눕고 바람 때문에 일어나고 바람 때문에 울고 바람 때문에 웃었습니다. 옛날부터 도봉구 방학동 사람들은 고목 하나에 울고 웃고 샘물 하나에 일어서는 민초 그 자체였습니다. 방학동 ‘김수영 거리’에서 찾은 여러분만의 ‘특별함’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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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지역서울특별시 송파구 편집국        사진송파구청 2017-02-16 호감도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프롤로그
    • 1.무덤 속이 궁금해
    • 2.문화강국 백제
    • 3.경당지구, 왕궁이 있던 자리일까?
    • 4.송파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백제
    • 5.풍납토성 축조에 숨은 비밀
    • 6.1500년 찬란한 고도, 축제로 다시 태어나
    • 7.교육과 재미를 한번에!
    • 8.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
    • 에필로그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서울특별시 송파구 -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지는 잘 알아도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 수천 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이곳이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물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아름다운 몽촌호수를 만나면 그 역사는 무려 1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송파구의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모두 한성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네 소중한 보물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한국의 폼페이 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입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풍납동 땅 아래에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한성백제 유적지가 표시된 지도만으로 보물찾기가 가능할까?

    “유물을 발굴 할 때는 조심조심 파야 해요. 유물을 찾으면 꼭 모눈종이에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보자!”

    “앗! 여기요, 여기! 지금 막 토기가 나왔어요.” “음, 글쎄. 그건 그냥 도자기그릇 조각 같구나. 봐봐. 공정과정에서 새긴 글씨가 선명하지?"

    한성백제박물관에는 풍납토성 일부를 그대로 잘라 옮겨놓은 토성 절개면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당대 백제인의 축조기술은 어떠했을까?

    “백제의 첫 왕성이에요. 현재는 2k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평지에 쌓은 토성 가운데가히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죠. 당시 백제의 국력의 위대함이 느껴지니?”

    “네! 시루떡처럼 층층이 다져 쌓은 판축법, 나뭇잎 등을 깐 부엽법 등 백제사람들 손재주도 참 뛰어났던 것 같아요!”

    경당연립이 있던 자리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터임을 입증하는 중요 유물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말 머리뼈, 우물, 창고, 대부(大夫)라는 한자가 새겨진 목 짧은 항아리까지… 이게 다 어디에 쓰였을까요?”

    “제사 지낼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지. 왕들의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이곳을 사당 역할을 겸하는 왕궁터로 보는 거야.”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는 여전히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근데, ‘한성백제’라 일컫는 기준은 뭘까?

    “어쩔 때는 ‘고대백제’, 어쩔 땐 ‘한성백제’라고 하는데, 왜 그렇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 아들 온조와 비류는 큰 꿈을 안고 남하해 지금의 서울 북부지역에 이르렀을 때가 약 2000년 전. 기원전 5년 온조가 송파 지역으로 천도해서부터 문주왕 원년까지 송파가 백제 수도로 문명을 꽃피운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지.”

    그러나 많은 천도 기록과 여러 가지 지명은 한성백제 수도 실체를 놓고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한성이라는 명칭도 아직은 논란거리. 왕궁성이라는 풍납토성은 어떨까?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가 평지성인 풍납토성은 폐기하는 대신 산성인 몽촌토성을 군사용으로 재활용하면서 한산성, 즉 한성은 점차 백제 고도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부상했다는 기록에서 ‘한성’의 기원은 사실 아직 뚜렷한 정답은 알 수가 없지.”

    “풍납토성은요? 축조에 연인원 100만명이 넘었다는 점에서 왕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관광축제의 영예를 안고 있는 축제가 바로 송파에서 열린다고 한다. 어떤 축제일까?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답게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적잖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송파는 독특한 위상을 점하지. 바로 1,500여 년 전까지 존속한 백제 한성시대의 도읍지였다는 점이야.”

    “그래서 송파가 그 못지않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도라고 말들을 하는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이와 연관된 축제도 유명한데, 뭔지 알 수 있겠니?”

    500년 한성백제시대의 찬연했던 역사문화의 발자취를 재현한 전통문화축제 현장, 그 속에는 어떤 참신한 내용들로 꾸며져 있을까?

    “근초고왕 열병식, 근초고왕 개선행렬 등 역사문화행사도 너무나 흥미로워요!”

    “전통과 미래를 잇는 축제이니만큼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지. 그렇게 역사성을 강조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즐거움이 가미된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들도 많단다.” “백제마을 체험이나 혼불채화, 단심줄 대동놀이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풍납리 일대, 특히 경당 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유물 발굴체험은 흔치 않은 기회라 더 특별하다. 한성백제 왕궁터의 진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포기! 하지만, 책에서만 봤던 유물 발굴을 직접 해보니 꽤 인상적이에요. 500년간 지속된 한성백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돌아갈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사실 백제 왕궁이 있었던 풍납토성은 세계적인 규모의 토성이야. 세계적인 관광지 폼페이처럼 풍납토성 일대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들지 않니?”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구에는 여전히 백제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그 당시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특히 백제 초기 왕도를 구성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핵심 성터로 남아 있습니다. 고대백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송파구를 둘러보는 시간도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역사의 향기에 정서적, 지적 욕구를 함께 충족시켜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송파구로 나가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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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돌 말린 제주의 맛

    돌돌 말린 제주의 맛

    지역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돌돌 말린 제주의 맛

    • 프롤로그
    • 1.호떡? 아니 빙떡
    • 2.제주 향토음식의 자부심
    • 3.재래시장이나 장에서 맛보는 것이 진리
    • 4.그 속이 궁금하다
    • 5.전병에 두르니 쫄깃함이 배가 된다
    • 6.싸고 맛있어
    • 7.제주의 별미와 함께
    • 8.돼지고기가 부족하던 시절에
    • 에필로그

    돌돌 말린 제주의 맛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푸른 바다물결이 넘실대는 제주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는 섬으로 보고 즐기고 맛볼 것이 풍부한 섬입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고 있는데요. 제주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곳들도 아름답지만 제주의 소소한 맛과 멋을 간직한 곳들도 꽤 아름답습니다. 제주도를 좀 더 특별하고 소소하게 즐기고 싶다면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미션은 ‘돌돌 말린 빙떡으로 제주를 맛보고 오라’ 입니다.

    메밀가루 반죽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은 옛 제주목에서는 빙철에 지진다 하여 빙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빙떡 말고도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른 제주도를 보여주겠다더니, 그게 빙떡이야? 그런데 이름이 독특하다.”

    “옛날 제주에서는 빙철에 지진다고 해서 빙떡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정의현 남원 지역에서는 모양따라 '멍석떡', 작은 제사에서 약식으로 제물을 차릴 때 쓴다 하여 '홀아비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혹은 '쟁기떡'으로라도 불린다고 해.”

    보기에는 평범하고 심심해보이지만 이래봬도 어엿한 제주 최고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이 맛보고 가는 별미 중에 별미다. 맛을 보면 그 자부심이 느껴질걸?

    “엄청 대단한 걸 보여줄 것처럼 하더니 겨우 빙떡이야? 호떡은 들어봤어도 빙떡은 처음인데?”

    “실망한 눈치인데? 이래봬도 빙떡이 제주시의 오랜 향토음식이라니까? 제주에 오면 꼭 한번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 그래야 제주의 전통문화도 알 수 있지.”

    고급음식점보다는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빙떡의 맛이 일품이다. 투박한 손으로 막 부쳐낸 빙떡은 재래시장의 보물이 아닐까?

    “그런데 빙떡 맛보러 간다더니 재래시장으로 가는 거야?” “응, 뭐니 뭐니 해도 빙떡은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것이 일품이거든."

    "막 지져 낸 빙떡을 한 입 먹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따끈한지 할머니 댁에서 맛보던 맛이 난달까?” “너희 할머니 댁 서울 아니었니?”

    재료가 꽤 단순해 보이는데 빙떡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는 걸까?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땐?

    “그런데 빙떡 만드시는 것 보니까 재료가 별로 없네. 만드는 방법도 꽤 단순해보이고.”

    “응, 맞아. 빙떡은 메밀가루 반죽에 채 썰어 데쳐낸 무소를 넣고 말아 돼지비계로 지진 떡이야. 요즘은 밀가루를 혼합하기도 하는데 메밀가루만 사용하면 얼마나 고소한지 몰라. 그리고 요즘엔 무소와 육류, 당근을 함께 넣기도 한다고 해.”

    메밀의 고소함과 건강함으로 돌돌 말아 부담스럽지 않다. 빙떡을 보니 터키의 케밥이나 토르티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데 생긴 것이 꼭 케밥이나 토르티아처럼 생겼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응, 그러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때 제례용으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해. 최근에는 제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도 낯설어 하지 않고 많이 찾는 다고 해. 아마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빙떡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싸고 맛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빙떡 하나 가격이 정말 싸다. 천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니 웬만한 간식보다 저렴하고 맛도 좋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구나!”

    “그래, 맞아. 저렴하면서도 건강하고 어른들은 옛날 생각이 나니까 자주 빙떡 맛보러 오신다고 해.”

    빙떡을 보니 제주의 또 다른 별미가 떠오른다. 빙떡이 간식정도라면 메인요리로 제주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말고기 육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빙떡 맛보고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제주까지 왔는데 또 다른 향토음식도 맛봐야 하지 않겠어? 바로, 말고기 육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

    “잘됐다. 빙떡은 맛있지만 뭔가 배가 부르지는 않았는데.”

    빙떡처럼 돼지고기가 부족하던 시절에 먹던 제주 향토음식으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제주의 인기 별미다. 빙떡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면?

    “그럼, 내일 아침은 제주의 또 다른 인기 향토음식, 몸국 어때? 최근에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면서 제주의 최고 인기음식으로 꼽히기도 한다는데.”

    “몸국? 이름이 독특하다. 제주의 향토 음식 빙떡을 맛보고 난 후라 그런지 왠지 기대되는데?”

    무채 속에 메밀전병으로 감싼 빙떡은 이름만큼이나 정겹고 친숙한 맛입니다. 음식점이나 고급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이나 오일장이 더 어울리고 더 맛있는 소소한 서민음식, 빙떡은 제주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고소하고 심심한 맛이 일품인 빙떡은 제주의 향토성 짙은 맛과 투박한 정성이 깃들어 있어 더 정감이 갑니다.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속속 들이를 알고 싶고 향토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제주시 향토음식 ‘빙떡’을 맛보고 그 속에서 제주를 마음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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