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따라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아픕니다.
다시 한 번 따라하세요. 자, 저기 알리씨. 입을 더 크게 벌려야 소리도 크게 나지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점심시간 전 10분 동안 기초 한국어 회화를 배운다. 배운다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따라 읽는 것이다. 한국말이 서툰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알찬 시간이 된다.
“장미씨는 한국말 잘 하니까 이런 수업이 필요 없죠? 그래서 우리 조선족 사람들이 참 좋아. 말도 잘 통하고 일도 야무지게 잘 하고. 자자 손님들 몰릴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경영지원이라는 팀의 차장은 슬쩍 장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능글스런 얼굴을 하고 지나쳤다.
공장이나 공단에서 그렇듯 서울 주변 식당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률은 대폭 상승했다. 국적도 언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중에서도 연변사람 즉 조선족들의 고용률이 눈에 띄게 많았다. 아마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임금 부담이 낮은데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임금을 받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고향으로 보내고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다.
저기요, 여기 이거 고기 정량 맞아요? 저기요, 여기 반찬 좀 더 달라는데 왜 안 갖다 줘요? TV프로그램 채널 좀 돌리게 리모컨 좀 가져다 줘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말투와 억양이 좀 어색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 유난히 뾰족한 말투로 그들을 대했다. 여기 사장 나오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반말로 야, 너라고 말하는 사람, 심지어는 욕설까지 아무렇지도 내뱉는 사람들까지.
사실 그들을 홀대하는 것은 식당을 찾은 손님들만은 아니었다. 식당에서도 일종 텃새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좀 더 험한 일을 한다거나 사고가 났을 때 처리들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거나 배달을 나갔다가 오토바이 사고라도 나면 병원비를 지급해주기는커녕 오토바이 수리비를 임금에서 차감하는 일도 잦았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은 녹록치 않았다.
꺅. 짧은 외마디 비명이 주방 창고 쪽에서 들렸다. 식당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창고 쪽으로 향했고 몇몇 사람들이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창고에서 식당 최고참 주방장이 허겁지겁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주방장은 별일 아니고 선반에서 물건이 장미씨 머리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고 했다. 그런데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래쪽 선반에는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고 장미씨가 겉옷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장미씨, 이리와 봐요. 아까는 많이 놀랐죠?”
식당에서도 유일하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친절한 여직원이 장미를 불렀다.
“아, 네. 조금요.”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식당일 하면서 사람들한테 정떨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러니 외국인들은 오죽할까 싶어. 나라도 나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괜히 불똥 튈까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씁쓸하네.”
“아니에요.”
“혹시나 사장이든 주방장이든 또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참지 말고 말해요. 왜 당하고 있어야 해. 사실 그렇잖아. 나나 그쪽이나 여기 사장이나 다 돈 벌자고 하는 거잖아. 가족들 부양해야 하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봐주고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참고 그건 옛날 일이야. 요즘은 그런 시스템도 다 잘 돼 있다고 하더라고. 주방장일은 내가 잘 말해볼게. 놀랐을 텐데 오늘 마감은 내가 하고 들어갈 테니 얼른 집에 가봐요.”
장미는 눈물이 찔끔 났다. 서럽고 서러운 마음이 겹겹이 복받쳐 뜨거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알기에 장미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강해져야 했다. 기회의 땅에서 외로움을 딛고 당당히 일어나 꿈을 이루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