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북으로 배우는 한글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기록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되어있지 않다면 그 일은 역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상의 인류는 초기에는 그림으로, 이후 문자가 발명되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대부분이 오랜 시간 동안 사용했던 한자로 기록되었지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에는 독자적인 문자를 통한 기록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특이한 케이스의 문자다. 우리는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 한글의 반포 년도가 언제인지,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모두 알고 있다. 과연 세계에 이렇게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문자가 과연 있었던가?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 수많은 세계의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제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이 한글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글이 아닌 훈민정음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종을 도와 한글을 만들었던 정인지, 최항,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원리와 용례를 설명한 글이다. 그전까지는 한글이 어떤 원리로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1940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은 인체의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이렇게 문자를 만든 이치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는 글은 세계에 단 하나, 훈민정음해례본뿐이다. 그리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오늘날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정한 것은 한글과 이것을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찾은 우리글의 가치
이렇게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한글의 가치를 알리고 한글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2014년, 용산구에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했다. 문자적, 그리고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한글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꽃피우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에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과 관련된 문화를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한글의 가치를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국내와 국외에 흩어진 한글 자료를 수집하고 한글을 연구하는 활동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2014년에 완공된 국립한글박물관의 건물은 하늘과 사람, 땅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한글에서 모음의 철학적 배경인 하늘, 사람, 땅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다양한 소재의 재료를 통해 한글의 원리를 시각화했다. 기하학적인 모습을 가진 국립한글박물관 건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지붕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건물의 출입구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이 형태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추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이다. 현대적인 추녀 아래에 마련된 출입구로 들어가면 한글에 대한 모든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진다.
한글이 걸어온 길을 걷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한글의 전시와 교육을 담당하는 곳은 2층이다. 2층은 상설 전시실과 카페와 문화 상품점을 겸하는 아름누리가 있다. 상설 전시실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는데 한글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떻게 사용되었고,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1부 -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겪는 한자의 불편함을 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오랜 연구를 통해 1443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의 문자를 창제했다. 훈민정음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문자지만 현대 언어학의 관점으로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원리를 갖추고 있는 문자다. 또한 당시 조선사회의 정신적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세계관과 부합되어 고도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의 1부는 한글의 창제와 한글이 없던 시대의 문자, 그리고 한글의 원리를 설명한다. 한글은 조선의 백성들이 글을 읽지 못해 불편함을 겪자 세종대왕이 애민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글이다. 이러한 주제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구성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사용되었고 한글 창제 이후에도 꾸준히 사용되었던 차자 표기법에 대한 설명도 1부에서 만날 수 있다.
2부 – 쉽게 익혀서 편히 쓰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조선시대의 모든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백성들이 어렵고 불편한 한자를 익히지 않아도 되면서 많은 정보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글은 교육과 종교, 예술, 일상생활 등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언해를 통해 한글이 널리 퍼졌다. 언해란 한문으로 된 책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불교와 유교의 경전을 위주로 이뤄졌지만 후에 각종 실용 분야로 확대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각종 문서나 편지, 문학 작품, 생활용품 등에 사용되면서 조금 더 일상적인 문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글은 만들어지자마자 널리 쓰인 것은 아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당시에 조선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자를 사용하던 계층에서 의식적으로 한자의 사용을 고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의 2부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한글이 조선사회에 널리 퍼진 이유와 사건들을 통해 조선사회에서 한글의 발전사를 볼 수 있다.
3부 –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의 공식 문자로 선언된 한글은 이후 국립 한글 연구기관인 국문 연구소가 설립되면서 한글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국문 연구소 설립되고 3년이 지난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한글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어 연구 단체들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일제 치하에서도 한글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창제 이후 조선과 대한민국 문화의 뿌리가 된 한글은 현재 문자로서의 기능은 물론 미술, 무용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도 콘텐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3부는 일제강점기에서의 한글과 광복 이후, 그리고 오늘날 현대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글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창제 이후 자유롭게 사용되었던 한글은 국문 연구소와 조선어 연구회를 통해 체계적인 표준안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근대 한글 연구에 대한 사실과 근대 한글의 교육,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를 살아가는 한글에 대한 발전사를 시간의 흐름으로 살펴보는 곳이 3관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 과거부터 한글의 창제, 그리고 현재의 한글까지 살펴볼 수 있었던 상설전시관 외에 국립한글박물관은 즐길거리가 많다. 3층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매년 3~4회 가량 열리는데, 이때 열리는 전시회는 한글의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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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시실 옆에는 한글 놀이터와 한글 배움터가 있다. 한글놀이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6세에서 9세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한글을 느낄 수 있는 체험 전시관이다. 이곳에서 한글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의 대상인 것이다. 한글배움터는 한글과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이곳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한글의 종류와 구조, 발음을 살펴보면서 표음문자인 한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을 통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장면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한글날은 10월 9일 만이 아닙니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에겐 365일이 한글날입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10월 0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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