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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선’이 되기 위해 노력한 단재, 신채호사당


우리 조선은(...)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낭객의 신년만필’ 中) 진정 조선을 위할 줄 알았던 그, 단재 신채호 선생! 그가 남긴 흔적에 대해 알아보자. 

                    
                

죽음도 꺾지 못한 단재 신채호의 독립 의지

  •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신채호사당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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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구를 들어서면 나오는 신채호사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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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는 선생의 영정과 선생을 추모하는 향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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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신채호사당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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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들어서면 나오는 신채호사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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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선생의 영정과 선생을 추모하는 향이 놓여 있다.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이 되면 으레 나왔던 이름, ‘신채호!’ 2014년 치러졌던 수능 국어에서는 신채호의 ‘민족상고사’라는 글이 나와 많은 수험생들의 애를 먹였다고. 이처럼 현재까지도 신채호 선생이 주목받는 이유는, 당시 격렬했던 항일투쟁의 정신과 올바른 역사의식의 함양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죽음도 불사른 조선의 독립을 향한 의지는 그가 남긴 저서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여 온갖 만행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강도 정치가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혁명으로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하는 것이 조선 민족의 정당한 수단이다.' 이는 의열단의 요청을 받아 작성한 '조성혁명선언'의 첫 부분이다. 첫 부분만 봐도 느꼈겠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힘이 있고, 단호함이 배어있다.
 
1880년 12월 8일 대전에서 태어난 신채호.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독립’일 것이다. 그만큼 조선의 자주독립과 국권 수호를 위해 열렬히도 애를 썼고, 일제에 대한 저항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1928년 체포, 1936년 2월 21일 중국의 여순 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그리고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동하며 민족사의 고취에 힘썼던 선생은 특히,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말로 역사를 규정, 우리만의 민족사관을 수립하고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다졌다. 

 

단재의 정신이 깃든, 신채호 선생이 잠들어 있는 곳

  • 사당 뒤편 햇살 내리쬐는 곳에 자리한 선생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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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의 묘소에 자리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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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채호선생의 삶과 업적, 필체 등을 볼 수 있는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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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뒤편 햇살 내리쬐는 곳에 자리한 선생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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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묘소에 자리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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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의 삶과 업적, 필체 등을 볼 수 있는 기념관. 

충북 청주시에 자리한 신채호사당! 이름 그대로, 독립운동에 있어서 누구보다 뜨거웠고 앞장섰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모신 곳으로 1978년에 처음 세워졌다. 1981년 그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단재영당’ 혹은 ‘단재영각’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채호사당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외삼문이 자리하는데 겹처마에 맞배지붕 형식이며, 솟을삼문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문에는 '精氣門(정기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참! 사당을 들어설 때는 이것 하나 유념할 것! 들어갈 때는 오른쪽으로, 나올 때는 왼쪽으로 나오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외삼문을 넘어서면 바로 한가운데에 '丹齋影閣(단재영각)'이라는 현판이 걸린 본당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실내에는 선생의 영정과 향이 놓여 있다. 이어, 밖으로 나오면 사당 뒤편에 자리한 선생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아담한 봉분 앞에는 '단재 신채호 지묘'라는 비석이 있어 이곳이 선생의 묘소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묘소 한 켠에 자리한 모과나무는 어릴 적 중국역사서인 ‘자치통감’을 읽은 기념으로 그의 할아버지가 심어주신 것이라는 점에서 이쯤이 그의 집터가 아니였을까라고 추측한다.
 
모진 고문으로 타지에서 고생하다 마지막을 맞게 된 선생이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고향에 묻히셨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떠난 그를 가슴으로 추모해 본다. 이외에도 선생의 지나온 삶과 업적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기념관도 방문해보자. 여기에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인다면 더욱 쉽고 친근하게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정몽주의 삶에 감동하여, 그의 '일편단심가'에서 따온 호, '단재!' 문득 그의 독립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 곧, 그의 호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 신채호사당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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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가 어느새 지금은 선생을 모신, 사당과 묘소가 되었네요. 이곳에 계신 선생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을까요?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06월 0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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