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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이맛’으로 전하는 마음


새해 첫날, 가족의 건강과 무사 안녕을 기원했다면 이제는 가족과 친지들을 직접 찾아뵙고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직장 생활에 어깨가 처지고, 가벼운 월급봉투에 살림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 절로 힘이 난다. 언제나 우리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선물이 생각나질 않는다. 백화점 상품권이나 모바일 상품권이 대세라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오랜만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뵐 생각에 마음이 달떠 있으면서도 선물 때문에 고민하는 당신에게, [트래블투데이]에서 부모님께 선물하기 좋은 ‘맛’들을 준비했다. 

                    
                

500년 전통의 달실마을 한과

우리 전통 한과는 맛도 맛이지만, 고운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곱다. 우리 전통 한과를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참 ‘곱다’는 것이다. 서양식 스낵 과자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지만, 그래도 매번 큰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한과의 고운 빛깔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어릴 적 고향에서 한과를 만들어 먹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더욱 한과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어쩐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요즘 한과에서는 예전의 맛을 찾을 수 없다.
 
경북 봉화군 봉화읍에 위치한 달실마을은 여전히 전통 방식대로 한과를 만들고 있는, 전국에 몇 안 남은 한과마을 중 하나다. 마을의 이름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지형의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표준어법에 따르면 ‘닭실마을’로 표기하는 것이 맞지만, 경상도 지방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달실마을’이라 불러 왔다. 이 때문에 마을의 이름이 ‘달실마을’에서 ‘닭실마을’으로 바뀌었다가, 지난 2012년 다시 ‘달실마을’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달실’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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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달실마을은 안동 권씨의 집성촌을 이룬 마을로 지금도 많은 고택과 종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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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실마을의 번성을 이룬 충재 권벌의 종택과 청암정, 석천정사 등은 마을의 명물이다.  

이 마을은 과거 조선 중기의 유학자 충재 권벌(1478~1548)의 5대조가 정착한 이래, 안동 권씨의 집성촌을 이뤘던 마을이다. 충재 권벌이 입향한 뒤 마을이 번성을 이뤄, 그를 입향조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오래된 고택 몇 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만큼, 유서 깊은 고택과 종택이 즐비하다. 충재 종택과 종택 옆에 자리한 청암정, 석천정사 등이 마을의 대표적인 명소다. 현재 이 마을은 명승 제60호로 지정돼 있다.
 
다시 한과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처럼 종택과 고택이 즐비하다 보니 달실마을 아낙들은 하루가 멀다고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했다. 한과 역시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그렇게 마을의 아낙들이 전통 방식으로 한과를 만들어 온 지 어언 500년.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온 음식 솜씨를 익히 알고 있던 봉화군청에서 한과를 만들어 파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주문이 들어오지만, 여전히 수작업으로 한과를 만들고 있다. 

국산 재료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달실마을 한과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지금은 명절 때마다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주문이 밀려들어 온다. 한 번쯤 기계 생산을 생각해 봄직 한데도, 달실마을 아낙들은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곱게 빻은 찹쌀을 시루에 찐 뒤, 기름에 튀겨 조청과 튀밥 등을 입히는 번거로운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한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수작업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기계를 이용하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한과를 팔아 손주 용돈을 쥐여줄 생각에 웃음 짓는 달실마을 아낙의 모습에서 우리네 어머니들 모습이 보인다. 우리 어머니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달실마을 한과만큼, 설 선물로 안성맞춤인 것도 없다.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영광 굴비

전남 영광군의 법성포는 굴비를 말리기에 최적의 기후 환경을 갖춘 곳이다.

매년 설 선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굴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광 굴비’다. 굴비 하면 ‘영광’이라는 말이 저절로 따라붙는다. 굴비는 조기를 염장하여 말린 것으로, 전남 영광군, 그중에서도 법성포 일대가 대표적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법성포가 굴비로 유명해진 것은 예부터 조기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법성포 인근에는 일곱 개의 작은 섬이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른바 ‘칠산 바다’가 있는데, 한때 이 칠산 바다는 조기의 황금 어장이었다. 조기가 어찌나 많았는지, 배가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조기가 뛰어올라 만선을 이뤘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다. 그 많던 조기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칠산 바다에서 더는 조기를 잡을 수 없는 까닭에,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에서도 목포, 제주 등 남쪽 지역에서 조기를 들여오는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어업을 하는 혹자는 영광 굴비가 ‘한물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소비자들이 느끼기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영광 굴비의 명성은 전보다 더욱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칠산 바다의 조기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난 조기를 가져다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광 굴비는 여전히 우리나라 최고의 맛으로 손꼽힌다.
 
그 비결은 굴비를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영광군의 기후와 독특한 염장법에 있다. 굴비는 보통 봄부터 여름 사이에 말린다. 이때 법성포의 습도와 일조량,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굴비를 말리기에 더없이 좋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소금물에 조기를 담갔다 말리는 데 반해, 영광군에서는 1년 동안 보관하여 간수가 빠진 천일염을 이용해 조기를 잰다.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굴비의 맛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과거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라갔다는 영광 굴비, 올 설날에는 부모님께 진상해 드리는 것이 어떨까.

 

달큰한 우리 전통 명주, 과하주

'과하주'는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명했던 우리 전통 명주다. 

설날에는 ‘이것’을 빼놓을 수 없다. 적당히 오른 취기는 온 가족 모두 모인 자리를 더욱 흥겹게 한다. 더욱이 정초에 조금씩 나눠 먹는 ‘이것’은 약이 된다 했다. 이 정도 말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로 술이다. 우리 민족에게 술은 예부터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기쁨을 나누기 위해, 또는 슬픔을 덜어내기 위해서도 술을 마셨다. 형제들 몰래 한 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던 부모님의 마음을 어릴 적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다 자라고 보니 알겠다. 이제껏 부모님께 좋은 술 한 번 대접해드리지 못했다면, 우리 전통 ‘명주’라 불리는 이 술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경북 김천시 남산동 지게마을에는 ‘과하천(過夏泉)’이라 불리는 유명한 우물이 있다. 과하주는 과거 이 우물의 샘물로 만들어 마셨다고 전해지는 술이다.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過夏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명했던 우리나라의 전통 명주 중 하나다. 알코올 농도는 13도 정도이며, 향이 독특하고 맛이 좋아 조선 시대 때는 임금께 진상하기도 했다.
 
과하주는 일제강점기까지 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해방 이후 가내 양조 규모로 명맥을 유지해오다 한국 전쟁 이후 그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1984년 당시 김천문화원장이던 송재성이 과하주를 다시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하주는 찹쌀과 누룩 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어 반죽하고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감칠맛이 뛰어나고 청량감이 좋아 많은 애주가에게 사랑받고 있다. 설 연휴 애주가이신 부모님께 사랑받는 딸, 아들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과하주 하나면 충분하다. 평소 전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양손 가득 들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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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평소 부모님께 전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성 가득 담긴 선물을 준비해볼까요? 더욱 풍성한 설이 되길 기대하며!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3년 01월 1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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