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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순대 천왕’ 찾아 떠나는 순대 기행


찬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덜덜 떨고 있노라면, 배와 온기를 든든하게 채워 줄 음식 생각이 더욱 간절히 난다. 때마침 길거리 음식을 내놓고 파는 포장마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포장마차는 떡볶이, 어묵 등 주머니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요깃거리로 가득 하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순대다. 순대는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간식으로, 돼지 창자에 숙주, 우거지, 당면 등을 넣고 선지를 섞어 맛과 색을 낸 뒤 수증기에 쪄내 만드는 음식이다. 하지만 순대는 지역에 따라, 또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와 형태가 모두 다르고 이름도 제각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개성 순대, 제주 순대, 명태 순대, 어교 순대 등 무수히 많은 순대 중에서 우리나라 ‘3대 순대 천왕’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순대, 넌 어디에서 왔니?

 
  • 따끈따끈한 순대는 겨울철 추위를 잊게 해주는 별미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순대를 먹기 시작했을까. 순대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6세기 경 중국의 가사협이 저작한 『제민요술』에 소개되어 있는 ‘양반장도’를 그 기원으로 보는 설이다. 양반장도란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채워 넣어 삶아 먹는 방법을 말한다. 돼지가 아닌 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순대를 만드는 방법과 같다. 따라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순대를 먹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후 여러 문헌에서 순대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순대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시의전서』라는 문헌에 이르러서 부터다.
 
한편, 순대가 중국 원나라 시대 때 몽골군이 먹던 전투식량 ‘게데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게데스는 돼지 창자에 쌀과 야채를 혼합해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징기스칸이 대륙 정복을 위해 빠르게 이동하며 간편히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로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어 몽골의 음식이 많이 유입되던 상황이었다. 이 전투식량은 훗날 독일 소시지의 기원이 되기도 했으니, 순대와 소시지는 친척 쯤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순대의 기원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사실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순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이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순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왔으며,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바이마을에서 만나는 '함경도 아바이순대'

 
  • 강원 속초의 아바이마을에서는 아바이순대를 맛볼 수 있다

‘아바이’라는 말은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방언이다.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내려왔던 함경도 주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무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바로 이 마을에서 우리나라 ‘3대 순대 천왕’으로 손꼽히는 순대 중 하나인 아바이순대를 만나볼 수 있다. 함경도 아바이순대는 다른 순대들이 소창을 사용하는 데 반해 대창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다. 아바이순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워낙 돼지 대창이 귀하다 보니 예부터 아버지한테만 대접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아바이순대는 선지를 적게 쓰는 대신 찹쌀을 많이 넣고 당면은 쓰지 않는다. 직경이 굵고 내용물이 풍성해 삶을 때 쉽게 터지기도 한다. 색이 밝고 식감이 부드럽다. 머리고기는 곱게 갈아 볶은 후 넣는다. 
 

 

천안 병천순대골목의 '병천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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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천순대골목의 순대국밥은 아우내장터를 찾는 이들의 단골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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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천읍에 위치한 병천순대골목은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주말이면 충남 천안의 병천 순대골목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전국 각지에서 순대 맛을 보기 위해 온 손님들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등 장사진을 이루기 때문이다. 병천순대는 1960년대 병천면 인근에 돈육가공공장이 들어서면서 그 가공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고자 야채와 선지가 많이 들어가는 순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처음에는 순대를 파는 곳이 열군데 정도에 불과했으나, 이후 병천순대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자 수십 곳으로 증가하며 지금과 같은 순대골목을 이루게 됐다.
 
병천순대는 돼지 창자 중 가장 가늘고 부드러운 소창을 사용한다. 이 소창을 여러 번 겹쳐서 야채와 선지로 그 속을 채우면,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없어진다. 맛은 담백하고 식감은 쫄깃하여 수십 년 전부터 아우내 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 메뉴였다. 특히 기름기를 없앤 돼지뼈 국물에 순대를 넣어 끓인 순댓국이 별미다. 진하게 우려낸 돼지뼈 국물과 병천순대 특유의 담백한 맛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이루어 낸다. 병천순대는 아바이순대나 백암순대보다 선지를 더 많이 쓴다. 그래서 색이 유난히 검붉다.
 

 

백암 우시장의 명물 '백암순대'

 

경기 용인의 백암면은 조선시대 때 영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지역이었다. 전국에서도 큰 규모의 우시장이 열렸고, 이 때문에 보부상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이 백암장을 찾을 때마다 찾았던 것이 바로 백암순대국밥이었다. 백암순대국밥은 우시장과 도축장으로 비교적 고기가 흔했던 백암장의 아낙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 팔았던 것이 시초로, 보부상들에 의해 전국 팔도로 그 명성이 번지며 유명해졌다.
 
백암순대는 다른 지역의 순대보다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또 백암순대는 ‘뼈있는 순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머리고기를 완전히 갈지 않고 순대 속에 넣기 때문에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있다. 백암순대의 재료는 대부분 크기가 크고 성긴 편인데, 이는 생활이 어려운 장터 사람들에게 고기 씹는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아낙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백암순대는 병천순대와 마찬가지로 돼지 소창을 쓰며, 선지는 약간만 넣다. 당면도 적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떠나는 순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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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지방의 오징어 순대는 오징어에 속을 채운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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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남부시장에 가면 따끈따끈한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다

아바이순대, 병천순대, 백암순대로 대표되는 ‘3대 순대 천왕’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특색 있는 순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으로 꼽히는 오징어순대는 돼지 창자가 아닌 오징어의 몸통에 속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또 전주 남부시장에 있는 순대국밥과 피순대도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다. 피순대는 일반 순대와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지만 선지를 듬뿍 넣어 진한 붉은 색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순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인공 창자를 쓰지 않고 돼지 대창에 내용물을 채운다. 속에는 당면 대신 돼지피와 부추, 파 같은 양념을 넉넉히 담는다. 이 밖에도 생태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를 채우는 명태순대, 찹쌀과 당면을 위주로 만드는 당면순대 등이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무수한 종류만큼이나 순대를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서울, 경기, 충청도지역에서는 고춧가루, 소금, 후추가 들어간 양념장에 찍어 먹지만,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는 새우젓이나 후추가 섞인 소금에 순대를 찍어먹는다. 전라도 지역은 하얀 소금에 찍어 먹거나 초장에 찍어 먹고,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막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는다. 이처럼 순대는 들어가는 내용물과 만드는 방법, 그리고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며, 먹는 방법도 상이하다. 각 지역의 특색과 입맛을 품은 순대. 이만하면 순대도 만든 사람의 정성과 먹는 사람의 지혜가 가득한 요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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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사진을 보고 있으니 트래블아이는 군침이 꿀꺽 돕니다. 이름도 만드는 법도 먹는 법도 모두 각양각색인 순대! 지금 당장 전국 방방곡곡으로 순대 기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트래블투데이 김혜진 취재기자

발행2019년 01월 1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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