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산 남쪽의 고골 저수지 근처에는 화려했던 역사를 감춘 절터가 있다. 춘궁동 동사지는 통일신라 이후, 혹은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던 거대한 규모의 절터를 이르는 말로, 발굴 작업 당시 광주동사(廣州棟寺)라고 적힌 기와가 출토되었으므로 이곳에 있던 절의 이름이 광주 동사였음을 알고, 이에 이 절터를 춘궁동 동사지라 명명하였다. 동사는 그 규모가 매우 거대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동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두 개의 쌍둥이 탑 뿐이다. 이 춘궁동 동사지를 찾아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은 트래블피플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이야기를 품은 두 개의 석탑
춘궁동 동사지를 지키고 서 있는 두 개의 석탑.
두 개의 탑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5층 석탑의 특징은 이중으로 된 기단 위에 탑신이 올려진 것이니, 사진을 통해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의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이 고려 석탑들은 화려한 장식이 없음에도 안정되고 묵직한 모양새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주변이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쌍탑 또한 두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동사는 그 규모가 상당했던 사찰로 짐작되고 있다. 금당의 중앙에 남아 있는 본존불 대좌 하대석은 당대의 최대의 크기인 것으로 추정되어 한 때 이 절이 얼마나 이름 높은 곳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춘궁동 동사 발굴 당시에는 수막새 기와 등이 발견되었으며, 춘궁동 일대에서는 백제시대 토기와 평기와가, 동사지의 석탑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탑들의 안에서는 납석제 소탑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두 탑이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데 비추어 보면, 고려가 건국되기 전부터 있던 사찰이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중건을 거듭했을 것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동사의 건축 연대는 신라 말 내지는 후삼국 시대까지 예측되고 있으니, 동사가 가장 화려했을 시절에 두 탑이 우뚝 섰을 것이다.
1
1
상륜부가 없음에도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 3층석탑의 모습.탑이 선 자리, 동사를 상상하다
동사지에 서 있는 두 개의 탑은 매우 유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높이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물 제 12호로 지정된 5층석탑과는 달리, 보물 제 13호로 지정된 3층석탑은 상륜부가 소실되어 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물로 지정되었던 것은 납석재 소탑들이 출토된 탑이 바로 이 3층석탑이며, 그 양식이 5층석탑에 비해 흥미롭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층석탑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기단부와 몸돌이 육중한 데 비하여, 2층과 3층의 탑신은 급격히 줄어든다. 나란히 선 5층석탑과 비교해 본다면 조금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이와 같은 특징은 매우 보기 힘든 것임에도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신비로울 따름이다. 팔각형의 건물 터를 굽어보고 있는 두 개의 석탑.
절은 온데 간데 없으나, 춘궁동 동사지의 석탑들은 아직도 굳건한 모습이다. 석탑들이 숨기고 있는 백제와 고려의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이들이 춘궁동 동사지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으니, 동사와 3층석탑이 제 모습 그대로 복원될 날을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언젠가 멋진 모습을 회복하게 될 동사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 트래블피플이 이 사라진 절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6월 24 일자
해당 콘텐츠에 대한 기여도 기사+사진 기사 사진 오류수정
참여한 트래블파트너가 없습니다.
참여한 주재기자가 없습니다.
참여한 파워리포터가 없습니다.
참여한 한줄리포터가 없습니다.
테마리스트 페이지 버튼 테마별 기사리스트 페이지로 이동
테마리스트 해당기사와 같은 테마기사 리스트
테마리스트 바로가기 버튼 테마별 리스트 정보제공
핫마크 콘텐츠에 대한 중요도 정보
콘텐츠호감도
콘텐츠들에 대한
트래블피플의 반응도
사용방법 안내버튼 설명 페이지 활성화
함께하는 트래블피플
트래블파트너, 슈퍼라이터,
파워리포터, 한줄리포터로 구성된 트래블피플
스크랩
마이페이지
스크랩 내역에 저장
해당기사에 대한 참여
추가정보나 사진제공,
오탈자 등 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