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에 낮잠에서 깨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다가 쨍그랑 하는 소리에 눈이 번뜩하고 뜨인 것이다. 할아버지께선 또 아버지가 만드신 도자기를 던지신 모양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우고 있는 방 문 앞에서 귀를 쫑긋하고 세우며 말들을 엿듣고 있는데 엄마가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고는 방으로 들어가라고 버럭 소리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요 근래 종종 싸우셨다. 그 발단은 아버지의 뜬금없는 중대발표로부터였다. 오래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 두시고 도자기를 만들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래도록 도자기를 만드시던 도예장인이시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라 오래도록 그 꿈을 키워 오신 듯했다. 그렇지만 워낙 엄한 할아버지 앞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한 채 지난 세월을 지나오신 듯했다.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어? 도자기는 무슨 놈의 도자기야 네가. 다 때려 부수기 전에 그만 두어라.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네 어깨에 딸린 처자식은 어쩌고 너 혼자 여기 틀어박혀서 흙이나 만지작거리고 있겠냐는 거냔 말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좀처럼 양 손을 어쩌지 못하고 숨만 씩씩 내뱉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종종 할아버지 작업실에 계신 적을 본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밤낮없이 할아버지 작업실에만 계신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도자기를 만들어내면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망치로 깨부쉈다. 그래도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대들지 않고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마당 한켠에 쌓아두셨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잘 드시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어떻게 된 일인지 술이 잔뜩 취하셔서는 작업실로 들어가셨다. 그러더니 도자기들을 손수 다 깨부수며 서럽게 우셨다.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어깨를 들썩이시며 아끼시던 도자기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어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달려가셨는데 한동안 아무도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 아버지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듣고 계시죠, 아버지. 저요 아버지처럼 멋진 옹기장이가 되고 싶었다고요. 이렇게 흙 만지고 있는 것도 좋고 행복한데, 이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 해도 되지 않습니까? 예? 아버지, 대답 좀 해보세요. 예?”
취중진담이란 걸 눈앞에서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버지는 가슴 깊이 묵혔던 말들을 할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뱉어내고 있었다. 아버지 모습을 보니 어쩐지 그렇게 커 보이시던 아버지가 한없이 작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저릿해왔다. 할아버지는 멀찌감치 에서 뒷짐을 지고 계시다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가 깬 도자기 파편들을 주우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식어버린 가마 앞에 서계셨다.
다음 날 아버지는 머리를 지그시 누르시곤 식탁에 앉으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아침도 거르신 채 아침 일찍 외출을 하셨다고했다. 아버지는 간밤의 일이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이 자신이 없던 차였다가 도리어 잘 된 것 같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셨는데 한 손에는 구하기 어렵다는 백토와 도예도구들을 사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 마루에 내려놓으시고 아버지께 나갈 채비를 하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점퍼를 챙겨들고 나갈 준비를 마치셨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그저 할아버지 발길을 뒤따라 갈 뿐이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보니 곤지암 도자기공원에 다다랐다. 할아버지께서는 간밤에 있었던 일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도자기 공원에 놓인 여러 도자기들과 도예 작품들을 세심한 눈으로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뒤에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감상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오래던 가마 앞에 다다르셨다. 전통가마라고 쓰인 그곳에서는 언제 불을 떼었는지도 모를 오래된 가마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할아버지께서 입술을 떼셨다.
“그게 그리 하고 싶더냐. 그리 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어찌 하겠어.”
“아버지.”
“온 신경을 이 투박한 손끝에 실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빚는 다고 생각해야지.”
집으로 돌아오신 후 할아버지는 식었던 가마에 다시금 불을 지피셨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앞에 서계셨다. 아버지가 작업실에서 나오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