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한 번만, 네?”
아빠도 엄마도 좀처럼 내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셨다. 지난 여행에 대한 실망이 크신 모양이었다. 백령도에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백령도가 그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백령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떠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지난 주말,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백령도를 여행하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설명해 주시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얼굴 모양을 한 바위나 예쁜 조약돌들이 널린 해변 같은 것도 그 순간에만 신기할 뿐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주말인데 친구들과 놀러 가지도 못하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봐야 하다니. 내가 빨리 집에 가자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었기에, 1박 2일의 일정이 당일치기로 줄어들며 백령도 여행은 싱겁게 끝나 버렸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백령도가 뉴스에 나왔다. 인천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로 점박이 물범이 선정되며, 점박이 물범이 사는 백령도가 언급된 것이다.
“엄마, 나한테는 저기 점박이 물범 산다고 얘기 안 했잖아!”
“얘는. 네가 얘기하면 듣기나 했니?”
엄마가 핀잔을 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콩돌 해변을 거닐거나 두무진을 구경하고, 사곶 해수욕장 사진을 찍기만 하는 등 유명한 곳들만 골라서 돌아다니신 엄마랑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경치가 좋은 곳보다는 재미있는 곳에 가기를 좋아하는 내가 백령도 여행 내내 지루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물범이 산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나도 그렇게 짜증 안 냈을 거 아니야!”
아쉬운 마음에 괜히 안방을 향해 외쳐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지, 뭐.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했다. 물개나 물범 같은 해양 동물들은 외국에나 사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점박이 물범 서식지가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다녀온 백령도에 물범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텔레비전 속의 점박이 물범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수면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거나 하며 놀고 있었다. 동물원의 작은 풀장이 아닌,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물범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인터넷을 켜고 백령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 물범의 숫자도 점점 줄고 있어서, 환경단체에서 점박이 물범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무진에 갔던 사람들이 가끔 바위 위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 물범을 육안으로 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점박이 물범의 매력에 푹 빠진 뒤였다. 어린 아기 같은 얼굴의 물범은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순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도 백령도 앞바다라고 한다. 게다가 심청이를 감싼 연꽃이 걸렸던 바위인 연봉 바위도 있는데 이 바위는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활짝 핀 것처럼 생겼다고 한다. 연봉바위에 걸리기 전에 연꽃에서 떨어진 연밥이 흘러들어 연꽃이 피게 된 마을인 연화마을까지, 백령도는 점박이 물범의 섬이면서 심청이의 섬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일주일 내내 조른 결과, 다음 달에 다시 백령도에 가 보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심청이의 전설과 신비로운 점박이 물범을 모두 마음속에 담고 올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얀 날개 섬이라는 뜻인 백령도. 이 섬의 이름에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백령도의 진가는 백령도 이야기를 모두 안 뒤에나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